박해는 선지자 조셉 스미스에게“또 하나의 천성”(교리와 성약127:2)이 되었다. 1820년 첫번째 시현을 본 이래로 적들은 이 위대한 회복의 선지자를 적대시했다. 선지자가 나부에 있던 5년 동안은 위대한 계시가 주어지고 교회가 성장하는 기간이었던 반면, 끊임 없는 박해의 연속이기도 했다.1843년과 1844년에 선지자는 십 이사도 정원회가 교회를 인도하도 록 가르치고 준비시켰다. 그는 자신 에게 남은 시간이 얼마되지 않았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 동안, 교회를 떠난 사람들은 교회를 그대로 놓아 두지 않았다. 1844년 6월 초에, 전에 교회 회원이었던 사람들과 이 사업을 적대하는 자들이 나부 익스포지터라는 신문을 발행했는데, 그 신문 은 선지자와 다른 교회 지도자들에 대한 거짓 기사를 실었다. 이것은 서 부 일리노이에서 성도들을 몰아낼 방안을 강구하던 그 지역의 반몰몬들 가운데 이미 붙어 있는 불에 기름을 끼얹는 일이 되었다. 나부 익스포지터에 대한 조치로, 나부 시장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던 선지자 조셉 스미스와 나부 시 의회는 나부 익스프레스 인쇄소를 파괴하고 모든 신문을 불태우라는 명령을 내렸다. 출판업자들은 그들의 입장을 나부에 있는 판사에게 알렸으며, 선지자와 시 의회를 상대로 한 영장을 받아냈다. 그들은 그들이 해한 일에 대해 무죄 판결을 받았다. 그러나 판사가 교회 회원이었기 때문에, 선지자의 적들은 이러한 판결에 만족하지 않았다. 그래서 선지자와 다른 사람들을 회원이 아닌 다른 판사에게 제소하였으나 그들은 거듭 무죄로 방면되었다. 이번에는 일리노이 주 와샤에 있는 한 신문이 몰몬을“지독한 악마”라고 불렀으며, 문제를 영원히 해결하는 유일한 방법은“무기를 사용”하는 길 밖에 없다고 하였다. (때가 찬 시대의 교회사, 275 참조) 이 긴장되고 위험한 시기에 선지자 조셉 스미스는 일리노이 주의 주지사인 토마스 포드 주지사를 찾아가 도움과 이해를 구했다. 그러는 동안, 선지자의 적들도 주지사를 찾아가 그들이 몰몬들을 대항하도록 도와 달라는 요청을 했다. 주지사는 선지자를 반대하는 자들의 편을 드는 것 같았다. 선지자는 그들이 원하는 것은 자신과 그의 형 하이럼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그는 빨리 그 곳을 떠날 계획을 세웠으며, 성도들을 서부로 이주시킬 장소를 물색하기 시작했다. 계시로 알게 된 이주는 결국 일어나고야 말았다. 그는 자신이 떠나고 나면 박해는 가라앉으리라고 믿었다. 일부 교회 회원들은 선지자의 계획에 반대하면서, 그가 회원들을 두고 떠나는 것은 남아 있는 사람들이 홀로 박해를 감수하도록 내버려 두는 것이라고 했다. 선지자는 이렇게 대답했다. “내 목숨이 나의 친구들에게 아무 가치가 없는 것이라면 나에게도 가치가 없는 것입니다.”(History of the Church, 6:549) 그리고 그는 나부로 돌아갔다. 선지자 조셉 스미스, 하이럼 스미스 및 나부 시 의회 의원들은 폭동의 죄목으로 체포되어 카테지 감옥에 수감되었다. 6월 25일, 카테지 그레이 부대의 대장이자 반몰몬당의 활동적인 회원이었던 로버트 에프 스미스 치안 판사 앞에서 예심이 열렸다. 나부 시 평의회의 모든 의원들은 500달러의 보석금을 내고 풀려났으며, 순회 재판소의 다음 개정 기간에 출두하도록 지시 받았다. 피소자들 중 대부분이 그 때 나부로 떠났지만 조셉과 하이럼은 주지사와 면담하기 위해 남았다. 그 날 저녁에 한 경관이 조셉과 하이럼에게 중대한 범죄인 반역죄에 대해 재판 받을 때까지 그들을 감옥에 가두어 두도록 스미스 판사가 승인하고 서명한 구속 영장을 갖고 왔다. 조셉과 그의 변호사는 심문 때 그런 혐의에 대해 전혀 언급이 없었기 때문에 그 구속 영장은 불법이라고 항의했다. 그들은 주지사에게 항의했지만 주지사는 “직무를 수행하고 있는 공무원을 방해할 수 없다고 말했다.”(때가 찬 시대의 교회사, 278) 그러나 그는 자신이 나부로 가게 되면 선지자와 하이럼 스미스를 데려가겠다고 약속했다. 1844년 6월 27일, 목요일, 선지자는 존 테일러와 윌라드 리차즈 장로와 함께 카테지 감옥에서 밤을 보낸 댄 존스를 포드 주지사에게 보내, 폭도들이 감옥을 습격하여 스미스 형제를 죽이겠다는 계획을 엿들었다는 것을 전하게 했다. 포드 주지사는 선지자에게는 그런 위험이 없을 거라는 다짐을 댄 존스에게 했다. 존스 형제는 감옥으로 돌아가는 일이 허용되지 않아 대신 나부로 돌아갔다. 포드 주지사 또한 나부로 돌아갔으나 그는 선지자를 데리고 가지 않았다. 그 날 오후, 선지자는 무거운 분위기에 휩싸였다. 그는 존 테일러에게 “슬픔에 잠긴 나그네” (찬송가, 30장)를 불러 달라고 부탁했다. 하이럼 스미스는 테일러 장로에게 다시 불러 달라고 부탁을 했다. 우울한 느낌이 그에게도 엄습해 왔기 때문에 노래를 부를 기분은 아니었지만, 어쨌든 그는 그 노래를 다시 불렀다. 그들은 이층 침실에 있어도 좋다는 허락을 받았지만 간수가 와서 감방 안으로 돌아가도록 제의했다. 그는 그 곳이라면 그들에게 안전할 것이라고 믿었다. 선지자 조셉 스미스는 윌라드 리차즈에게 그들이 감방으로 갈 경우 함께 가겠느냐고 물었다. 리차즈 장로는 선지자에게 그들이 선지자의 목숨을 빼앗는다면 그 곳에서 함께 죽겠다고 말했다. 선지자가 이렇게 말했다. “형제님은 그렇게 할 수 없습니다.”“전 그렇게 할 것입니다.”라고 리차즈 장로가 대답했다.(Roberts, Comprehensive History of the Church, 2:283) 존 테일러 장로는 이렇게 기록했다. “감옥의 앞 쪽 창문에 앉아 있을 때, 나는 얼굴에 칠을 한 사람들이 감옥의 모퉁이로 몰려와 계단 쪽을 겨냥하는 것을 보았다. 다른 형제들도 이미 같은 상황을 목격하였다. 내가 문 가로 갔을 때 하이럼 스미스 형제와 리차즈 박사는 이미 그것에 기대어 있었다. 자물쇠와 걸쇠는 쓸모가 없었기 때문에 그들은 문이 열리지 않도록 어깨로 문을 밀고 있었다.”(Gospel Kingdom, 359쪽) 조셉 필딩 스미스 회장은 이렇게 기록했다. “다섯 시가 조금 지나자 감옥 바깥 문에서 소란한 소리가 들렸으며, 간수에게 항복하고 총을 내려놓으라는 소리가 들리고 나서, 분노하고 증오에 가득 찬 무질서한 민병대원들이 감옥으로 몰려왔다.”(Church History and Modern Revelation, 2:401) 문을 통해 들어온 총알이 하이럼 스미스의 얼굴에 맞았다. 밖에서 두 번째 총알이 날아와 등에 맞자 그는 바닥에 쓰러지며“나는 죽노라”하고 말했다. 선지자가 몸을 숙이며 말했다. “오, 하이럼 형!”그는 페퍼박스라 부르는 6연발 총을 집어 들고 힘없이 반격을 시도해 보았다. 존 테일러는 창문을 통해 달아나려 했으나 그 순간 총에 맞았다. 그는 부상을 당했으나, 총알이 조끼 주머니에 들어 있던 시계를 맞추면서 생명을 구할 수 있었다. 그 시계는 순교 당한 시간 . 1844년 6월 27일 목요일, 오후 5시 16분 26초 . 을 영원히 가리키고 있다. 선지자 조셉 스미스도 창문을 향해 가기 시작했다. 가는 도중에 그는 뒤에서 날아온 두 발의 총알에 맞고 밖에서 날아온 한 발의 총알에 정면으로 맞았다. 그는 마당으로 떨어지기 전에 잠시 창가에 멈추어 서 있었다.(교리와 성약 135:1 참조) 갑자기 밖에서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 “몰몬들이 온다!”그들은 오지 않았지만, 그 말에 폭도들은 재빨리 물러갔다. 사건의 경위를 들은 포드 주지사는 카테지 시가 보호 받고 있는지 알아보기 위해 그 곳으로 향했다. 그러나 성도들은 복수를 하려는 아무런 계획도 세우지 않았다. 그들의 선지자는 죽었으며, 그들은 슬픔으로 가득 찼다. 아무런 보복도 없을 것이라는 것을 확인시키기 위해, 윌라드 리차즈 형제가 나부의 한 대중 모임에서 말을 하면서, 그는 사람들에게 보복하지 않도록 당부했다. 순교 당한 선지자의 시신은 1844년 6월 28일에 나부로 돌아왔다. 그 곳에 살고 있는 수많은 사람들이 맨션 하우스에 와서 조문을 하고 그들을 잃은 것을 애도했다. 선지자와 하이럼 스미스의 모친인 루시 맥 스미스는 아들들의 죽음에 대해 다음과 같이 기록했다. “시신을 씻기고 수의를 입힌 후에 우리가 시신을 보는 것이 허락되었다. 나는 오랫동안 모든 신경을 긴장시키고 온 힘을 다해 하나님께 내게 힘을 주시도록 간구했지만, 그 방에 들어서서 살해 당한 두 아들이 내 눈앞에 누워 있는 것을 보고, 가족들의 흐느낌과 신음 소리, 그리고 죽은 아들들의 아내, 자식, 형제 자매들이‘아버지, 여보, 형’이라고 외치는 소리를 들었을 때, 그것은 감당키 어려운 일이었다. 나는 무너지듯 뒤로 물러나면서 영혼이 고뇌하는 가운데 주님께 부르짖었다.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이 가족을 버리셨나이까?’그 때 한 음성이 들려왔다. ‘나는 그들을 쉬게 하려고 내게로 데려 왔느니라.’… 우리가 겪었던 모든 슬픔과 고통의 장면들이 내 마음 속을 스치고 지나갔으며, 동시에 그러한 상황에서 이 정직한 아들들이 보여 준, 그들 마음 속에 가득 찬 순진함과 동정심이 떠올랐다. 평화롭고 미소 짓는 듯한 그들의 얼굴을 보면서, 나는 마치 이렇게 말하는 그들의 음성을 듣는 듯 했다. ‘어머니, 저희를 위해 울지 마세요. 저희는 사랑으로 세상을 이겼습니다. 우리는 세상 사람들이 구원 받을 수 있도록 그들에게 복음을 가져다 주었습니다. 그들은 우리가 갖고 있는 간증 때문에 우리를 죽였지만, 이제 더 이상 우리에게 힘을 쓸 수가 없습니다. 그들이 우세한 것은 잠시일 뿐이며, 우리의 승리는 영원합니다.’” (History of Joseph Smith, 324~325쪽)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