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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신앙·간증

불공평의 벽을 넘어서

by 높은산 언덕위 2015. 12. 24.

이 밤 늦게까지 있거나 나보다 아이스크림을

더 많이 먹을 때면 나는 이렇게 말했다. “이건

공평하지 않아.”그러면 인생의 다른 많은 상황에서도

그렇지만 늘 다음과 같은 대답이 들려온다. “인생은 공평하지 않아”

중학교에 다닐 때 나는 인생이 공평치 않다고 생각했었다. 나는

키가 작았다. 그것도 평균에서 약간 작은 것이 아니라 작아도

너무 작았다. 하루는 같은 학년 전체가 사진을 찍기 위해 키

순서대로 섰는데 나는 작은 쪽 맨 끝에 있었다.

작은 키에도 불구하고 나는 농구를 좋아해서 학교 농구팀에

도전해 보기로 했다. 체육관을 가득 메운 학생들이 각각의

포지션에 기용되기 위해 자신이 갖고 있는 기술들을 나타내

보이기 시작할 때, 나는 몇 시간 동안의 연습이 좋은 결과를

가져올 것으로 기대하고 있었다. 코치들은 체육관 가운데 서서

우리들을 관찰하면서 그 내용을 메모했다. 나는 그들이 내 키를

보고 나를 주시해 주기를 기도했다.

몸을 푼 후에 감독이 호루라기를 불고 먼저 슈팅 능력을 시험해

보겠다고 설명했다. 그는 내게 공을 주었다. 몇 명 지나지 않아

차례가 된 나는 코트 중간에서부터 드리블을 한 다음 3점 슛 라인

지점에서 점프 슛을 해야 했다. 나는 모든 사람이 보고 있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드리블을 할 때마다 손이 떨렸다. 자유투

지점에서 멈춘 나는 점프를 한 뒤 공을 던졌다.

나는 공이 적어도 링이라도 맞추길 바라는

심정이었다. 다행히 공은 링 주위를 돌더니 그물 안으로 떨어졌다.

예상보다 빨리 다시 던질 기회가 주어졌다.

이번에도 공은 링 안으로 들어갔다. 다시 내가

던질 차례가 되었을 때도 행운은 계속되었다.

전년도 팀에서 센터로 뛴 선수가 유심히

관찰하고는 탈락하지 않도록 도와 주기로 했다.

내가 공을 던지기 직전에 그는 나를 위해 다른

사람들의 주의를 환기시키기 시작했다.

그 날 일과를 마치고 1차 합격자들의 명단이

발표되었을 때 내 이름이 거기에 있었다. 나는

넘어야 할 높은 산에서 이제야 첫 발을 내딛은 것이었다.

며칠 동안의 엄청난 긴장과 이른 아침의 시험

끝에 2차 합격자가 발표되었다. 나는 두 번째

고개도 넘어설 수 있었다. 한두 번의 시험이 더

남은 상태에서 확률은 더 높아지고 있었지만 경쟁

상대들 또한 만만치 않았다.

선발 시험은 주말이 되어서야 끝났다. 나는

선발이 되었는지 알아보기 위해 코치 사무실로

걸어가면서 침착하려고 애썼다. 그러나 내 이름은 명단에 없었다.

나의 과학 선생님이기도 한 부코치가 나를

옆으로 끌어당겼다. “넌 키는 작지만 아주 잘

했어. 가능성이 많아.”그렇지만 그의 칭찬도 실망에 찬 내게

도움이 되지 못했다. “선수를 탈락시키는 일은 어려운 일이다.

지금으로서는 팀에서 경기를 하기에는 네 키가 너무 작아. 내년쯤

다시 보자.”

왜 나란 말인가? 내 꿈 하나가 무산되었다. 그것은 내가 노력을

하지 않았거나 연습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 아니라, 내가 통제할

수 없는 다른 요인 때문이었다. 인생이 공평해 보이지 않았다.

왜 나란 말인가?

몰몬경을 여러 번 읽었지만 최근에서야 깨달은 것이 하나 있다.

그것은 암몬의 성공이 그의 형제인 아론에게 얼마나 불공평하게

느껴졌을까 하는 것이다. 그들은 똑같이 레이맨인들을 가르치러

갔다. 하지만 암몬이 왕의 양 떼를 지키면서 영에 인도되어 라모나이

왕과 그 백성들에게 침례를 주는 동안 아론과 그의 동반자들은

극심한 고난을 겪었다.

레이맨인들이“이들을 쫓아내어 매질하였고, 이 집에서 저 집으로

이 곳에서 저 곳으로 몰아내어 결국은 믿도나이 땅에 이르게 되었으며, 이 곳에서 잡혀 감옥에 갇힌 후 단단한 밧줄에 묶여 여러

날을”(앨마서 20:30) 지냈던 것이다.

아론이“왜 나란 말인가?”하고 물을 수 있었던 모든 상황들을

생각해 보라. 아론이 실패만 하고 감옥의 벽만 바라보는 동안

암몬은 대단한 성공을 거두고 있었다. 사실상 아론이 구출된 것도

암몬이 거둔 성공의 일부였다. 아론의 인생은 공평하지 않았다.

불공평함에도 불구하고 아론은 아무런 분노의 표시를 나타내지

않았다. 오히려 그는 감옥에서 구출된 즉시 주님께 그에게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를 간구하면서 다시 선교사로서 봉사했다. 그러자

주님은 그를 축복하셨다. 아론은 모든 레이맨인과 그 가속을

다스리는 왕인 라모나이의 부친을 가르치고 침례를 주게 되었다.

나 자신의 상황도 조금은 아론과 비슷하다고 느껴졌다. 내

주변에 있는 다른 사람들은 대단한 성공을 거두는 반면, 나는 내

힘으로는 어쩔 수 없는 이유들 때문에 성공을 거두지 못했다.

나는 선택할 수 있었다. “왜 나란 말인가?”라고 물으며 자기

연민에 빠질 수도 있고, 아니면 아론처럼, 인내심을 갖고 주님을

의지할 수도 있었다.

이로 인해 나는 때때로 내 인생이 공평치 않더라도 내 염려를

구세주께 맡길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리차드 지 스코트 장로님은 이렇게 말씀했다. “속죄는 단지

우리가 죄와 실수를 극복하는 데 도움을 줄 뿐만 아니라, 우리

자신의 결정이 아닌 여건이나 다른 사람의 행위로 말미암은

불공평한 결과들이 가져다주는 인생의 부조리를 해결해 줄

것입니다.”“(구속주예수그리스도”, 성도의벗, 1997년7월호,

54쪽) 내가 그리스도께로 돌이켰을 때 내 인생이 갑자기 공평해진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불공평한 상황에서도 그분과 같이 되려고

노력할 때, 그분은 내가 비통해하는 것에서 벗어나, 오히려

불공평한 세상을 사랑하도록 도와 주신다.

(채드 모리스2003-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