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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전세·예임

전세에 관한 교리는 결코 맥을 놓게 하는 교리가 아닙니다

by 높은산 언덕위 2015. 12. 9.

아브라함 3:26

그리고 자기의 첫째 지체를 지키는 자들은 더하여질 것이요, 자기의 첫째 지체를 지키지 아니하는 자들은 자기의 첫째 지체를 지키는 자들과 함께 같은 왕국에서 영광을 얻지 못하리라. 그리고 자기의 둘째 지체를 지키는 자들은 그들의 머리 위에 영광이 영원무궁토록 더하여지리라.

 

“첫째 지체”는 우리가 이 세상에 태어나기 전의 기간, 또는 전세의 삶으로 알려진 기간을 가리킨다. 첫째 지체를“지키기 위해”전세에서 하나님의 영의 자녀들은 선택의지를 사용하여 하나님 아버지께서 제시하신 구원의 계획에 따를 것을 택해야 했었다. 하나님의 영의 자녀들 가운데 3분의 1은 루시퍼(악마)를 따르고 하나님과 구원의 계획에 대해 모반을 일으킴으로써 그들의 첫째 지체를 지키지 못했다. 따라서 그들은 하늘에서 쫓겨났으며 진보할 수 있는 기회를 더 이상 가질 수 없었다.

“둘째 지체”는 이 세상에서 인류가 필멸의 육신으로 존재하는 것을 말한다. 둘째 지체는 개인들이“하나님 만나기를 준비 하는”(앨마서 12:24) 시험의 기간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의 원리와 의식을 받아들이고 순종하는 자는 모두 영생 곧 하나님의 가장 위대한 선물을 받게 되며“그들의 머리 위에 영광이 영원 무궁토록 더하여진다.”(아브라함서 3:26) 이 세상에서 복음을 받아들이고 복음대로 생활할 수 있는 기회를 갖지 못한 사람들은 사후 영의 세계에서 그러한 기회를 받게 된다.

 

닐 에이 맥스웰 장로는 다음의 말씀을 통하여 첫째 및 둘째 지체를 이해할 수 있게 해주었다.

전세에 관한 교리는 결코 맥을 놓게 하는 교리가 아닙니다. 우리 각자에게는 선택해야 할 일, 끊임없이 해야 할 어려운 과제, 경험해야 할 아이러니와 역경, 잘 활용해야 할 시간, 항상 개발해 나가야 할 재능과 은사들이 있습니다. 우리가 ‘그때 그곳에서’ 택함 받았다고 해서 “현재 이곳에서” 아무렇게나 해도 좋다는 의미는 결코 아닙니다. …

“사실 첫째 지체에서의 적합성은 더 많은 의무가 따르며, 누구도 제외될 수는 없는, 엄격한 둘째 지체를 보증했을 뿐입니다. 부가적인 훈육과 고통이 주님의 가장 유능한 학생들을 위한 교육 방식이 되는 것 같습니다. (모사이야서 3:19; 베드로전서 4:19 참조) 따라서 우리의 존재는 하나님의 끝없이 펼쳐지는 교과 과정에 의해 맞추어진 연속체입니다.

“그러므로 이 둘째 지체로 들어설 것에 합의한 것은 사전에 모든 것을 잊게 하는 마취를 하겠다는 약속과 같습니다. 의사들은 수술 도중에, 수술을 더 계속해야 할 경우, 이미 승인된 것을 재확인하기 위해 환자를 마취에서 깨워 그에게 다시 허락을 받지 않습니다. 우리는 이곳에 와서 일정한 상황 아래서 일정한 경험을 하기로 약속했습니다.”(닐 에이 맥스웰, 성도의 벗, 1986년 1월호, 20~21쪽)

1995년 노변의 모임에서 청년들에게 연설하면서 십이사도 정원회의 회장 대리였던 보이트 케이 패커 회장은 다음과 같이 말씀했다.

“출생에서 사망에 이르는 필멸의 삶의 과정은 영원한 율법에 따르고 있으며, 위대한 행복의 계획과 같이 계시를 통해 설명된 계획을 따르고 있습니다. 저는 여러분의 머릿속에 다음과 같은 한 가지 개념, 바로 한 가지 진리를 심어 드리고 싶습니다. 바로 그 계획에는 세 가지 부분이 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두 번째, 즉 중간 부분에 위치해 있는데, 바로 이 부분에서 여러분은 유혹과 시련, 어떤 경우에는 비극에 의해서까지 시험을 받게 될 것입니다. 그 점을 이해하신다면 여러분은 인생의 의미를 보다 잘 알 수 있게 될 것이며, 의심과 절망과 좌절의 병폐를 보다 잘 물리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세 부분으로 이루어진 구속의 계획은 장엄한 3막극에 비유될 수 있습니다. 제1막은 ‘전세에서의 생활’로 불립니다. 경전에서는 이것을 우리의 첫째 지체로 묘사합니다.(유다서 1:6, 아브라함서 3:26 참조) 출생에서 부활의 시기까지의 시기인 제2막은 ‘둘째 지체’이며 제3막은 ‘사후의 생애’ 또는 ‘영생’이라고 불립니다.

“필멸의 상태에서 우리는 커튼이 올라가면서 제2막이 막 시작된 극장에 입장하는 배우와 같습니다. 이미 제1막은 지나갔습니다. 이 작품은 누구와 누가, 무엇과 무엇이 연관되어 있고, 누가 영웅이며 누가 악인인지 판단하기 어렵게 만드는, 마구 뒤섞인 큰 줄거리와 작은 줄거리를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가 관객이 아니라, 오히려 그 작품 무대의 한가운데에 선 등장 인물이기에 더욱 복잡합니다.”(보이드 케이 패커, The Play and The Plan [1995년 5월 7일에 청년들에게 하신 말씀], 1~2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