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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말씀·경전

힘써 노력하며

by 높은산 언덕위 2015. 10. 6.

힘써 노력하며

토마스 에스 몬슨 부대관장
대관장단 제1보좌
사랑하는 형제 여러분, 오늘 저녁 여러분 앞에 서서 하나님의 신권을 지니고 있는 우리의 성스러운 특권에 관해 가르치고 간증하는 것은 엄숙하고 두려운 경험입니다. 저를 위한 여러분의 신앙과 기도를 간구합니다.

오늘 저녁 컨퍼런스 센터에 참석해 있거나 세계의 다른 여러 장소에 앉아 있는 아론 신권 및 멜기세덱 신권을 지닌 사람들 외에도 어떤 이유로든 그들의 의무에서 벗어나 방황하고 다른 길을 따르기로 한 신권 소유자들이 많이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그런 사람들에게 손을 뻗어 구조하고 그들과 그들의 가족을 주님의 식탁으로 데려오라고 분명하게 말씀하십니다. 주님께서 “그러므로 모든 사람으로 하여금 저마다 자기 의무를 배우며 자기에게 임명된 직책을 부지런히 완수하게 하라.”고 선언하셨을 때 주신 주님의 신성한 지시에 주의를 기울여야 합니다.1 그분은 이렇게 덧붙이셨습니다.
“보라, 내가 범사에 일일이 명령해야 함은 합당하지 아니하나니, 무릇 매사에 강요당하여 행하는 자는 게으른 자요, 현명하지 못한 종이라 따라서 아무 상도 받지 못하느니라.
“진실로 내가 이르노니, 인간은 오로지 훌륭한 대업에 힘써 노력하며 자신의 자유 의사로써 많은 일을 행하며 많은 의를 이룩해야 하느니라.
“이는 인간에게 능력이 있고 [선택]의지가 있음이니, 사람이 선을 행하면 결코 자기 상을 잃지 아니하리라.”2
성스러운 경전에는 여러분과 제가 따라야 할 본보기가 이렇게 적혀 있습니다. “예수는 지혜와 키가 자라가며 하나님과 사람에게 더욱 사랑스러워 가시더라.”3 그리고 그분은 “두루 다니시며 선한 일을 행하시고 … 이는 하나님이 함께하셨[기]”4 때문이었습니다.
저는 주님의 생애를 공부하면서 그분의 영속적인 교훈과 놀라운 기적은 대체로 그분이 아버지의 일을 행하실 때 일어났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엠마오로 가는 길에 그분은 살과 뼈로 된 육신으로 나타나셨습니다. 그분은 음식을 취하셨으며 자신의 신성에 대해 간증하셨습니다. 이 모든 일은 그분이 무덤에서 나오신 후에 일어났습니다.
그보다 전에, 그분은 여리고로 가는 길에서 한 맹인의 시력을 회복시켜 주셨습니다.
구세주께서는 가르치고 간증하고 다른 사람을 구해 주는 일로 늘 바쁘게 움직이셨습니다. 그런 일은 오늘날 신권 정원회에 속해 있는 우리의 의무입니다.
1980년 4월 6일에 발표된 대관장단과 십이사도 정원회의 선언문에는 간증과 진리로 가득 찬 다음과 같은 선언이 있습니다.
“우리는 후기성도 예수 그리스도 교회가 실제로 하나님의 아들이 육신을 입고 지상에서 그분의 사업을 행하실 때 세우셨던 교회를 회복한 것이며, 그분의 성스러운 이름, 곧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지니고 있으며, 그분을 모퉁잇돌로 하여 사도와 예언자의 기초 위에 세워졌으며, 아론과 멜기세덱의 반차에 따라 옛날에 그 신권을 지녔던 자, 즉 아론 신권은 침례 요한에 의하여, 멜기세덱 신권은 베드로, 야고보, 요한에 의하여 회복되었다는 것을 엄숙히 간증합니다.”5
1889년 10월 6일에 조지 큐 캐넌 부대관장은 이렇게 호소했습니다.
“저는 신권의 힘이 강화되는 것을 보고 싶습니다. … 저는 이 힘과 권세가 신권의 전체 조직까지 확산되어서, 위로는 교회 대관장에서 아래로는 이 교회의 가장 작고 또 가장 낮은 집사에까지 미치는 것을 보고 싶습니다. 모든 남성들은 하나님의 계시를 구하고 또 즐겨 가져 하늘의 빛이 그의 영혼을 비추며 그의 의무에 관한 지식, 곧 그의 신권을 통하여 그에게 지워져 있는 하나님의 사업의 특정 부분에 관한 지식을 그에게 주어야 합니다.”6
저는 오늘 밤 인생에서 겪은 두 가지 경험을 나누고자 합니다. 하나는 제가 소년이었을 때 있었던 일이고, 다른 하나는 남편이자 아버지였던 제 친구에 관한 경험입니다.
저는 아론 신권 교사에 성임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정원회 회장으로 봉사하라는 부름을 받았습니다. 우리의 고문인 해롤드 형제님은 우리에게 관심이 많았으며 우리는 그 점을 알았습니다. 어느 날 그 분이 제게 말했습니다. “톰, 너는 비둘기 기르는 것이 즐겁지? 그렇지?”
저는 관심을 보이며 “예”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러자 그 분이 제의했습니다. “내가 네게 순종 버밍햄 롤러 비둘기 한 쌍을 주면 어떻겠니?”
이번에는 제가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좋아요, 형제님!” 여러분, 그 당시 제가 갖고 있던 비둘기는 그랜트 초등학교의 지붕 위에서 잡은 평범한 비둘기였습니다.
그 분은 다음날 저녁에 자신의 집으로 오라고 했습니다. 다음날은 제 어린 시절 중 가장 긴 하루였습니다. 저는 형제님이 집에 도착하기 한 시간 전부터 그 분이 직장에서 돌아오기를 기다렸습니다. 그 분은 저를 뒷마당의 조그만 헛간 위쪽에 있는 비둘기 집으로 데려갔습니다. 이제까지 본 비둘기 중 가장 아름다운 비둘기를 보았을 때 그 분이 말씀했습니다. “네가 수컷을 하나 고르면 내가 세상에서 그 어떤 다른 비둘기와도 다른 암컷을 주마.” 저는 선택을 했습니다. 그러자 그 분은 제 손에 귀여운 암컷 비둘기를 놓았습니다. 무엇이 그렇게 다른지 물었습니다. 그 분은 “주의 깊게 보거라. 그러면 눈이 하나밖에 없는 것이 보일 게다.”라고 말했습니다. 이상하게도 그 비둘기는 눈이 하나 없었는데, 그것은 고양이가 몹쓸 짓을 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 분이 말씀했습니다. “네 비둘기를 집으로 가지고 가서 한 열흘 동안 집에서 잘 키운 다음 밖으로 날려 보내 집으로 다시 돌아오는지를 보거라.”
저는 해롤드 형제님의 말씀대로 따랐습니다. 비둘기를 날려 보내자 수컷은 자기 집 지붕 위 근처를 뽐내며 걸어 다니다가 먹이를 먹으러 집안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러나 외눈박이 암컷은 순식간에 가 버렸습니다. 저는 해롤드 형제님에게 전화를 걸어 물었습니다. “외눈박이 비둘기가 형제님 댁으로 돌아갔나요?”
“어서 오너라 같이 보자꾸나.”라고 그 분이 말씀했습니다.
우리가 부엌문으로 나와 비둘기 집으로 걸어갈 때, 형제님은 “톰, 너는 교사 정원회 회장이란다.”라고 말했습니다. 물론 저도 그것은 알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분은 이렇게 덧붙였습니다. “교사 정원회에 있는 밥(사람 이름)을 활동화시키려면 네가 어떻게 해야겠니?”
제가 대답했습니다. “이번 주 정원회 모임에 밥이 올 수 있도록 해 볼게요.”
그 다음 그 분은 특별한 둥지로 올라가서 제게 외눈박이 비둘기를 건네주셨습니다. “며칠 동안 잘 보살피고 다시 노력해 보렴.” 이번에도 그렇게 했고, 다시 한번 그 비둘기는 사라졌습니다. 똑같은 일이 다시 일어나 “어서 와서 비둘기가 돌아왔는지 보자꾸나.”가 반복되었습니다. 우리가 비둘기 집으로 걸어갈 때 고문과의 대화가 있었습니다. “밥을 정원회 모임에 오게 한 것을 축하한다. 빌을 활동화 시키기 위해 너와 밥이 어떻게 하면 되겠니?”
“다음주에 오게 할게요.”라고 제가 자원했습니다.
이런 경험은 거듭해서 반복되었습니다. 저는 참으로 제 고문 해롤드 형제님이 특별한 비둘기, 날려 보낼 때마다 돌아오리라는 것을 알고 있던 유일한 비둘기를 제게 주셨다는 것을 다 커서야 깨달았습니다. 그것은 2주마다 교사 정원회 회장과 개인 신권 접견을 갖는 영감 받은 이상적인 방법이었습니다. 저는 그 외눈박이 비둘기에게 많은 신세를 지고 있습니다. 정원회 고문에게는 더 많은 신세를 지고 있습니다. 그 분은 인내심을 갖고 제 앞에 놓인 책임들에 대해 준비하도록 잘 도와 주었습니다.
아버지, 할아버지 여러분, 우리에게는 소중한 아들과 손자를 인도할 보다 막중한 책임이 있습니다. 그들은 우리의 도움이 필요하며, 우리의 격려가 필요하며, 우리의 모범이 필요합니다. 우리 청소년들에게는 비평가들은 거의 필요 없고, 따라야 할 더 많은 모범들이 필요하다는 현명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교회 참석이나 모든 교회 활동들이 자신들의 습관과 삶에 거의 포함되어 있지 않은 사람들과 관련된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이런 수련 장로들이 더욱 많아지고 있습니다. 이것은 아론 신권 시절에 저활동이 된 아론 신권 정원회의 어린 소년들과 성인이 되어 침례를 받고 장로에 성임되기에는 활동이나 신앙이 꾸준하게 이어지지 못했던 사람들이 많기 때문입니다.
저는 그런 사람들의 마음과 영혼에 대해 생각할 뿐만 아니라 그들의 사랑하는 아내와 성장하고 있는 자녀들에 대해 슬픔을 느낍니다. 이런 사람들은 도움의 손길, 격려의 말 한마디, 들어 올리고 쌓아 나가겠다는 소망과 간증으로 가득 찬 마음에서 표현되어 나오는 진리에 대한 개인적 간증을 기다립니다.
저의 친구 셸리가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그의 아내와 자녀들은 훌륭한 회원이었지만 그에게 침례와 신권 축복을 받도록 동기를 부여하려는 모든 노력은 실패했습니다.
그러다가 그의 어머니가 돌아가셨습니다. 셸리는 너무도 슬픈 나머지 장례식을 치르던 영안실의 특별실에 혼자 들어가 있었습니다. 우리는 그가 혼자서 애도할 수 있도록 그 방으로 장례식 진행을 음성 중계했고 그 곳에서는 누구도 그가 슬퍼하는 것을 볼 수 없었습니다. 연단으로 가기 전에 제가 그를 위로했을 때, 그가 저를 껴안았으며 저는 따뜻한 마음을 느꼈습니다.
시간이 흘렀습니다. 셸리와 그의 가족은 그 도시의 다른 지역으로 이사했습니다. 저는 캐나다 선교부를 감리하라는 부름을 받았고 가족과 함께 캐나다 토론토로 이사해 삼년 동안 살았습니다.
제가 돌아와서 십이사도로 부름을 받은 후에 셸리가 전화를 했습니다. 그가 말했습니다. “감독님, 솔트레이크 성전에서 제 아내와 제 가족과 저를 인봉해 주시겠습니까?”
제가 머뭇거리며 대답했습니다. “하지만 셸리, 먼저 침례를 받아 교회 회원이 되어야 합니다.”
그는 웃으며 대답했습니다. “형제님이 캐나다에 있는 동안 저는 그 일을 처리했습니다. 형제님 모르게 살짝 해 버렸지요. 우리 집을 정규적으로 방문해 교회의 진리를 가르치는 확실한 가정 복음 교사가 있었습니다. 그는 교통 안전 지도원인데 어린아이들이 매일 아침 등교할 때와 오후에 하교할 때 길 건너는 것을 도와 줍니다. 그가 제게 그 일을 도와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길 건너는 어린이가 없을 때 그는 교회와 관련된 가르침을 계속해서 전해 주었습니다.”
저는 눈으로 이 기적을 보고 마음과 영혼으로 기쁨을 느꼈습니다. 인봉이 집행되었고, 한 가족은 하나가 되었습니다. 셸리는 그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세상을 떠났습니다. 저는 그의 장례식에서 말씀할 특권이 있었습니다. 저는 성전복을 입고 관에 누워 있는 셸리의 육신을 늘 기억할 것입니다. 저는 그를 잃었다가 찾았기 때문에 감사의 눈물을 흘리게 됩니다.
어떻게든 주님의 손길이 닿는 것을 느낀 사람들은 그들의 삶에서 일어나는 변화를 설명할 수 없습니다. 그들에게는 보다 낫게 생활하고, 충실하게 봉사하고, 겸손하게 행동하고, 보다 구세주처럼 되고자 하는 소망이 생깁니다. 영적인 시력을 얻고 잠시 영원에 대한 약속을 보게 된 그들은 예수께서 시력을 회복시켜 주셨던 맹인의 이런 말을 반복합니다. “한 가지 아는 것은 내가 맹인으로 있다가 지금 보는 그것이니이다”7
어떻게 우리는 이런 기적을 설명할 수 있습니까? 오랫동안 잠자던 사람들에게서 왜 이렇게 활동이 늘어날까요? 죽음에 대해 말하며 한 시인은 “하나님께서 그를 만지시니 그가 잠들었도다.”8라고 적었습니다. 저는 이런 새로운 탄생에 관해서도 “하나님께서 그들을 만지시니 그들이 깨어났도다.”라고 말하겠습니다.
태도와 습관과 행동의 이런 변화에 대해 대체로 두 가지 기본적인 이유가 있습니다.
첫째, 사람들은 영원한 가능성을 보고는 그것을 성취하기 위해 결정을 내렸습니다. 그들은 일단 탁월한 것을 이룰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면 평범한 것에 오랫동안 만족할 수 없습니다.
둘째, 다른 남자들과 여자들, 그리고 젊은 사람들은 구세주의 훈계에 따르고 이웃을 자신처럼 사랑했으며, 이웃의 꿈을 성취하기 위해, 포부를 실현시키기 위해 도움을 주었습니다.
사랑의 원리가 이 과정에서 촉매 역할을 했습니다.
시간의 흐름도 사람들의 삶을 변화시키는 구속주의 능력을 변화시키지는 못했습니다. 그분께서 죽은 나사로에게 말씀하셨듯이, 여러분과 저에게도 “나오라”9고 말씀하십니다. 저는 이렇게 덧붙이겠습니다. 의심의 절망에서 나오십시오. 죄의 슬픔에서 나오십시오. 불신앙의 죽음에서 나오십시오. 삶의 새로움으로 나오십시오.
우리가 이렇게 하고 예수께서 걸으셨던 길을 따라 우리의 발을 향하게 하면서, 예수께서 주셨던 간증을 기억합시다. “보라 나는 예언자들이 세상에 오리라고 증거한 바 예수 그리스도라 … 나는 세상의 빛이요 생명이라.”10 “나는 처음이요, 마지막이라. 살아 있는 자요, 죽임을 당하였던 자니, 아버지와 너희의 중보자니라.”11
우리의 도움이 필요한 정원회 회원들과 우리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정원회 회원이 되어야 할 사람들이 있습니다. 존 밀턴은 그의 시, 리시더스(Lycidas)에서 이렇게 적었습니다. “배고픈 양이 쳐다보니 … 먹지를 못하는도다.”12 주님은 친히 예언자 에스겔에게 “양 떼를 먹이지 아니하[는] … 이스라엘 목자들은 화 있을진저”13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신권을 지닌 형제 여러분, 이것은 우리의 일입니다. 그러한 일은 불가능한 것이 아님을 기억하고 결코 잊지 맙시다. 신권의 부름을 영화롭게 할 때 기적을 도처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신앙이 의심을 대치할 때, 비이기적인 봉사가 이기적인 노력을 없앨 때, 하나님의 권세가 그분의 목적을 성취합니다. 우리는 주님의 심부름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주님의 도움을 받을 자격이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노력해야만 합니다. 연극 쉐난도에는 영감을 주는 이런 대사가 나옵니다. “만일 우리가 노력하지 않는다면 그 때에는 하지 못한다. 만일 우리가 하지 않는다면 왜 우리가 이 곳에 있는가?”
한 사람씩 모든 사람이 말씀을 듣기만 하는 자가 아니라 행하는 자가 됩시다.14 주님의 예언자이신 고든 비 힝클리 대관장의 모범을 따릅시다.
옛적에 구세주를 따르던 사람들이 그랬듯이, 우리가 “나를 따라오라 내가 너희를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는 권유에 응할 수 있기를 빕니다.15 우리가 그렇게 될 수 있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간구합니다, 아멘. 


1. 교리와 성약 107:99.

2. 교리와 성약 58:26~28.

3. 누가복음 2:52.

4. 사도행전 10:38.

5. “Proclamation”, Ensign, 1980년 5월호, 52~53쪽 참조.

6. Deseret Semi-Weekly News, 1889년 10월 29일, 5쪽.

7. 요한복음 9:25.

8. Alfred, Lord Tennyson, In Memoriam A. H. H., section 85, stanza 5, line 4.

9. 요한복음 11:43.

10. 니파이삼서 11:10, 11.

11. 교리와 성약 110:4.

12. “Lycidas”, line 125.

13. 에스겔 34:2~3.

14. 야고보서 1:22 참조.

15. 마태복음 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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