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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예수 ·속죄

주 믿는 신도여

by 높은산 언덕위 2015. 11. 8.

예수 그리스도가 탄생하기 700년도 훨씬 전에, 이사야는 예수님에 대해 예언했으며, 그 예언은 게오르그 프리드리히 헨델이 쓴 오라토리오 메시야에서도 다음과 같이 불리고 있습니다. “이는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 바 되었는데 그의 어깨에는 정사를 메었고 그의 이름은 기묘자라, 모사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평강의 왕이라 할 것임이라”(이사야 9:6)
헨델의 메시야에서는 또한 이사야 40장 9절에 나오는 경고를 장엄한 선율로 전합니다. “아름다운 소식을 시온에 전하는 자여 …… 아름다운 소식을 예루살렘에 전하는 자여 너는 힘써 소리를 높이라 두려워하지 말고 소리를 높여 유다의 성읍들에게 이르기를 너희의 하나님을 보라 하라”1
베들레헴에서 태어나 강보에 싸인 여러분의 하나님을 바라보십시오. 가난하고 누추한 곳에서 태어나셔서 평범한 사람으로 뭇 사람들 가운데 걸으셨던 여러분의 하나님을 바라보십시오. 무한하고 영원한 구속주이셨으나 육체를 입고 자신이 창조하신 바로 그 지구에 내려와 사셨던 여러분의 하나님을 바라보십시오.
베들레헴의 성스러운 첫 번째 성탄절로 함께 돌아가 우리 주님의 탄생에 대해 생각해 봅시다. 임마누엘이자(이사야 7:14 참조) 이새의 줄기이며(이사야 11:1 참조) 돋는 해이시며(누가복음 1:78 참조) 전능한 주님이신(고린도후서 6:18 참조) 그분은 조용한 밤에 절정의 시기로 오셨습니다. 그분의 탄생은 창조주께서 지상에 오시겠다고 약속하신 것과, 하나님께서인간으로 낮추어 오심을 나타냅니다.(니파이전서 11:16~27 참조) 이사야는 그 사건을 이렇게 예언했습니다. “흑암에 행하던 백성이 큰 빛을 보고 사망의 그늘진 땅에 거주하던 자에게 빛이 비치도다”(이사야 9:2)
현대의 계시를 통해 우리는 예임된 이스라엘 왕이 지상에 탄생하신 계절이 봄이라는 것을 압니다.(교리와 성약 20:1 참조) 미가는 그분께서 “유다 족속 중에 작[은]”(미가 5:2) 베들레헴에서 나실 것이라고 예언했습니다. 주님이 탄생하신 마을은 큰 성 예루살렘 가까이, 북쪽으로 8km 거리에 있는 곳이었습니다. 예루살렘은 유대 지방의 수도이자 성전이 있는 곳이었으며, 로마인들의 요새였습니다. 반면, 베들레헴은 농경과 목축업을 하는 소박한 시골 마을이었습니다. 베들레헴의 유일한 명성은 고대 이스라엘 왕이자 장차 후손 중에 그리스도가 탄생하게 될 혈통이었던 다윗 왕의 출생지라는 것이었습니다. 따라서 그 작은 마을은 보통으로 다윗의 동네로 알려졌습니다. 히브리어인 마을 이름 베들레헴(Beth Lechem)은 “떡의 집”2을 의미합니다. 이 명칭은 생명의 떡으로 알려진 주님께서 탄생하시기 전까지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베들레헴 주변의 들판에서 수많은 양떼가 풀을 뜯었고, 이른 봄은 예로부터 양들이 새끼를 낳는 시기였습니다. 목자들은 청명한 밤하늘아래에서 양떼를 돌보느라 대부분 밤을 뜬 눈으로 지새웠습니다. 따라서 구주의 탄생을 알린 천사들은 목자들을 깨울 필요가 없었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어린 양
양의 번식기에 태어난 그 사내아이는 “하나님의 어린 양”(요한복음 1:29;니파이전서 11:31; 교리와 성약 88:106)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 명칭에는 깊은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새끼 양들이 태어나는 그 시기에 함께 태어나신 주님은 훗날 ‘도수장으로 끌려가는 어린 양’(이사야 53:7)이 되실 것이기 때문이었습니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그분은 또한 양들을 돌보는 선한 목자이셨습니다.(요한복음 10:11 참조) 따라서 그분의 삶을 나타내는 이 한 쌍의 상징은 봉사하고 또 봉사를 받는 이들을 나타냅니다. 그리스도가 이 두 역할을 다 맡으시는 것은 참으로 타당했습니다. 왜냐하면, 그분은 이생에서는 “만물 아래로도 내[려가셨지만]”(교리와 성약 88:6) 영원히 “높이 [오르셨고]”, “만물 안에 계시고, 만물을 통하여 계시고, 만물 주위에 계시[기]”(교리와 성약 88:6, 41) 때문입니다. 그분은 삶의 모든 양상을, 위와 아래 모든 각도에서 완전히 아셨습니다. 가장 위대한 존재였던 그분은 스스로 가장 낮아지셨습니다. 하늘의 목자가 어린 양이되셨습니다.
그분의 탄생은 위대한 선지자의 탄생, 왕가에 약속된 후계자의 도래나, 지상을 걸었던 사람 중 유일하게 완전한 사람의 탄생 이상을 의미합니다. 그것은 하늘의 하나님이 “그의 몸을 낮추어 인간이 되[시기]”3 위해 오신 것이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세상의 창조자이자 구약전서에 나오는 위대하신 여호와이십니다. 시내산에서 들렸던 것은 그분의 목소리였고, 택함받은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를 떠돌 때 그들을 지탱해 준 것은 바로 그분의 힘이었으며, 에녹과 이사야와 모든 다른 선지자에게 장차 있을 영광을 드러내신 것도 그분이셨습니다. 따라서 예수님의 탄생은 가장 위대한 기적입니다. 하나님이시며 하늘과 땅의 창조자이신 주님이 처음으로 자신을 세상에 드러내실 때, 그분은 힘없고 의존해야 하는 갓난아기의 모습으로 오는 것을 택하셨습니다.
고대 히브리 전통에 따르면 메시야는 유월절에 태어나실 것이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절정의 시기에 실제로 유월절 만찬 주간이 그 4월에 있었음을 압니다. 유월절은 애굽 장자들의 목숨을 앗아간 멸망의 천사로부터 이스라엘이 구원을 얻은 것을 기념하는 성스러운 유대인들의 명절입니다. 어린 양을 죽여 그 피를 자기 집의 목재 문설주에 발랐던 이스라엘 가족들은 목숨을 건졌습니다.(출애굽기 12:3~30 참조) 그리스도가 유월절에 나시고 33년 후, 그분은 죽음과 죄라는 멸망의 천사들로부터 자기 백성을 구하기 위해 자신의 피를 나무 십자가 위에 흘리셨습니다.
마리아와 요셉이 묵을 방이 없었던 것은 유월절 만찬 때문이었을지 모릅니다. 예루살렘의 유동 인구는 유월절 기간에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 여행자들은 주변 마을에서 숙소를구해야 했습니다. 마리아와 요셉은 가이사 아구스도의 영에 따라 호적하기 위해 요셉의 조상이 살았던 베들레헴으로 갔습니다. 호적하는 것은 그 해 어느 때라도 베들레헴에 가서 하면 되었지만, 모세 율법에 따라 모든 남성은 유월절에 예루살렘에 와야 했으므로 그들은 유월절을 택했을 것입니다.4베들레헴이 예루살렘 인근이었기에 나사렛에서 온 요셉 부부는 한 번에 두 가지 의무를 다 이행할 수 있었습니다.
여관 주인은 꽤나 못된 사람으로 전해져 왔습니다. 하지만 유월절이면 늘 붐비는 그 지역의 상황을 고려한다면, 나사렛에서 온 이 부부에게 줄 방이 없었던 그를 나무랄 수만은 없습니다. 유월절 순례자 대부분이 예루살렘 주변 들판에 천막을 치고 자는 동안 다른 많은 사람들은 숙소로도 알려진 여관에서 머물 곳을 찾았습니다. 그 베들레헴의 여관이 투숙객으로 넘쳐나는 것은 당연했고, 그 여관 주인은 아마도 친절을 베풀어 마구간을 내 주었을 것입니다.
혹 그들이 여관에서 방을 구했다손 치더라도 환경은 매우 열악했을 것입니다. 전형적인 석조 건축물이었던 그 당시 여인숙은 작은 방 여러 개로 이루어져 있었으며 각 방은 세 개의 벽으로만 둘러져 있어서 한쪽 면은 밖으로 트여 있었습니다. 하지만 마구간은 벽으로 둘러싸인 안마당, 혹은 석회암 동굴 같았으며, 투숙객이 데려온 동물들이 거기서 지냈습니다. 그곳이 안마당이었든 동굴이나 다른 피난처였든, 가축 사이에서 이루어진 그리스도의 탄생은 붐비는 여관 안보다 뚜렷한 이점이 있었습니다. 최소한 그곳은 평화로웠고, 사생활이 보장되었던 것입니다. 이런 점에서 마구간을 받은 것은 오히려 축복이었습니다. 인류 역사상 가장 성스러운 탄생이 경건하고 개인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속박된 자들에게 자유를
첫 번째 성탄절이 있기 700년 전에 선지자 이사야는 메시야에 관한 예언을 기록했고, 구주는 나중에 고향인 나사렛 사람들에게 그 예언을 읽어 주셨습니다. “주 여호와의 영이 내게 내리셨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내게 기름을 부으사 가난한 자에게 아름다운 소식을 전하게 하려 하심이라 나를 보내사 마음이 상한 자를 고치며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갇힌 자에게 놓임을 선포하며”(이사야 61:1; 또한 누가복음 4:18~19 참조)
속박당한 자에게 자유를 선포하시고 구속당한 자가 갇혀 있는 옥의 문을 여는 그리스도의 사명을 읽을 때, 우리는 아마 영의 세계에서 죽은 자 가운데서 행한 그분의 성역을 먼저 떠올릴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 모두가 속박당한 자가 아닙니까? 필멸하는 이 육신의 쇠락과 나약함, 육체의 유혹, 질병, 그리고 결국 사망에 속박되어 있기에 우리는 모두 자유로워질 필요가 있습니다.
위대한 임마누엘이신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죄와 상황, 과거의 사건 등 어느 것이든 우리를 속박하는 것에서 자유롭게 해 주시고자 오셨습니다. 주님은 속박당한 자들에게 자유를, 즉 죽음의 속박, 죄와 무지, 교만, 실수라는 감옥에서 나와 자유롭게 됨을 선포하십니다. 그분께서 죄수들에게 “나오라”(이사야 49:9)고 말씀하시리라는 것은 예언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자유롭게 되는 유일한 조건은 바로 주님께 상한 마음과 통회하는 심령으로 나아가며, 회개하고, 그분의 뜻을 행하려고 노력하는 것입니다.
약 30년 전에 알게 된 한 사람이 있는데, 편의상 토마스로부르겠습니다. 당시 토마스는 45세였습니다. 토마스보다 20년 앞서 그의 부모님이 교회에 들어오셨습니다. 토마스는 부모님의 새로운 종교에 관심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그의 부모님은 아들을 사랑했기에 언젠가 아들이 회복된 복음의 진리를 알게 될 날이 올 것이라는 희망을 품었습니다. 세월이 흐르면서 그들은 아들에게 적어도 선교사들과 만나 이야기라도 들어 보라고 수 차례 설득했습니다. 아들은 계속 거절했으며 부모님의 종교적 신념을 비웃었습니다.
어느 날 절망적인 심정으로 어머니가 아들에게 말했습니다. “애야, 선교사와 한 번만 만나 이야기를 나눠 본다면 다시는 교회 이야기를 꺼내지 않으마.” 토마스는 그 제안이 마음에 들어 선교사들과 만나기로 했습니다. 처음 세 토론 동안 그는 교만한 마음으로 앉아서 장로들이 가르치는 것을 이따금씩 조롱했습니다.
네 번째 토론은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와 복음의 첫 번째 원리에 관한 것이었는데, 토마스는 평상시와 다르게 조용했고, 경청만 했습니다. 토론 말미에 장로들은 구주에 대한 간증을 나누었습니다. 그때 한 선교사는 성경을 펼쳐 다음 구절을 읽어야겠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마태복음 11:28~29)
갑자기 토마스의 눈에서 눈물이 흘렀습니다. “그리스도가 내 죄를 용서할 수 있다고 말하는 겁니까?” 그가 물었습니다. “내 삶은 끔찍했어요. 내 죄에 대한 기억이 뇌리 속에서 사라지지 않아요. 죄책감에서 벗어날 수만 있다면 뭐든지 다 하겠어요.”
그의 교만은 죄와 죄책감에 사로잡힌 영혼을 숨긴 가면과도 같았습니다. 장로들은 토마스에게 회개하고 침례와 확인을 받는다면 그리스도께서 그를 용서하시고 죄에서 자유로워지게 해 줄 것이라고 확신시켰습니다. 그런 후 그들은 속죄의 권능에 대해 간증했습니다. 그 이후로, 토마스의 삶에서 모든 것이 변했습니다. 회개하고 극복해야 할 것이 많았지만 주님의 축복으로 그는 침례를 받을 자격을 갖추었습니다.
20년이 훨씬 더 흐른 후, 저는 독일 프랑크푸르트 성전 예배실에 앉아 있었는데 제 앞에 있던 백발이 성성한 노인이뒤를 돌아보며 “포터 장로님이 아니십니까?” 하고 말을 건넸습니다. 저는 그가 예수 그리스도의 권능으로 속박에서 자유로워졌고 여전히 주님의 교회에서 충실한 토마스라는 것을 알아보고 참으로 기뻤습니다.
이번 성탄절에는 하나님 아버지께 겸손하게 기도로 나아가서 그분의 사랑하는 아들의 권능이 매일 우리의 삶과 함께하며, 크든 작든 개인적인 속박으로부터 우리가 자유로워질 수 있도록 간청하는 것이 어떻습니까?
거룩한 밤
1987년 12월, 성탄절을 2주 정도 앞두었을 때 저는 이스라엘로 출장을 갔습니다. 안타깝게도, 그때 성지는 전혀 평화롭지 못할 때였습니다. 서안 지구에는 시위가 일어났고, 옛 예루살렘 시가지는 텅 비었으며, 가게는 문을 닫았습니다. 정치적 긴장감이 팽배했고, 설상가상으로 차가운 비가 한 주 내내 내렸습니다. 폭력 사태를 염려한 관광객들은 모여서 몸을 사렸습니다. 하지만 제가 예루살렘을 가로질러 걷고 있을 때 평화가 제 마음에 임해 이곳이 구속주께서 참으로 사랑했던 도시였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저는 성탄절이 되기 전 금요일 늦은 시간에 미국으로 돌아왔습니다. 이틀 후 안식일이 되었을 때, 알람 시계에서 울리는 “고요한 밤 거룩한 밤” 노래가 저를 깨웠습니다.만왕의 왕이 구유 안에 누워
우리의 친구 되려 하시네
그 음악과 메시지가 제 마음속 깊이 와 닿았고, 이스라엘 구속주의 영광스러운 희생과 완벽한 삶을 생각하며 저는 눈물을 흘렸습니다. 그분은 낮은 자들의 친구가 되고 약한 자들의 희망이 되어 주시기 위해 지상에 오셨습니다. 제가 예루살렘에서 한 경험을 떠올리자, 지상에 오셔서 우리 모두의 멍에를 짊어지신 그분에 대한 사랑이 제 온 몸을 채웠습니다. 그분께서 저를 친구로 여기신다고 생각하니 가슴이 뭉클했습니다. 그날 일요일 이른 아침에 느꼈던 그 감정을 절대 잊지 못할 것입니다. 그 느낌은 제가 여태껏 받았던 것 중에서 가장 순수한 간증이었습니다.
구속주에 대해 간증드립니다. 저는 그분이 살아 계심을 압니다. 저는 그분께서 속박당한 자들에게 자유를 선포하시기 위해 세상이 창조되기 전에 예임되셨음을 압니다. 그분의 탄생과 삶을 기리며 외칩니다. “엎드려 절하세.” ◼
(브루스 디 포터 장로 칠십인 2013-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