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종교/말씀·경전

후회에 관하여

by 높은산 언덕위 2015. 11. 6.


시간이 어찌 그리 빨리 지나갔는지 놀라울 뿐입니다. 그리고는 지난날에 우리가 내린 선택과 한 일들을 생각하기 시작합니다. 그러면서 우리 영혼을 행복하게 해 주고 마음에 기쁨을 주는 여러 소중한 순간을 떠올립니다. 그러나 우리는 후회스러운 순간들도 기억하게 됩니다. 다시 돌아가 되돌리고 싶은 순간들 말입니다.


병으로 죽음을 앞둔 사람들을 돌보는 한 간호사는 환자들이 생을 마감할 준비를 하는 것을 보며 종종 이런 단순한 질문을 했다고 합니다.
“후회하는 것이 있으세요?”
필멸의 마지막 날에 가까워지면 종종 생각은 명료해지고 사물을 바로 보는 시각과 통찰력이 생깁니다. 그래서 후회하는 것에 관해 물었을 때 그 사람들은 마음을 열고 솔직하게 답해 주었습니다.

1)사랑하는 이들과 더 많은 시간을 보냈다면 좋았을 텐데

죽음을 앞둔 환자들의 제일 보편적인 후회로는 사랑하는 사람들과 더 많은 시간을 보냈어야 한다는 것을 꼽을 수 있을 것입니다.
특히 남성들은 다음과 같은 보편적인 슬픔을 토로했습니다. 그들은 “[매일같이 돌아가는] 직장이라는 쳇바퀴에 너무 많은 시간을 소모한 것을 깊이 후회했습니다.” 가족과 친구와 함께 시간을 보내면서 특별한 추억을 공유할 기회를 놓쳐 버린 사람들이 많았던 것입니다. 그들은 자신에게 가장 의미 있는 사람들과의 관계를 돈독히 할 기회를 잃었습니다.
사실 우리는 종종 너무 바쁘지 않습니까? 슬픈 얘기지만, 심지어 우리는 바쁘다는 것을 무슨 훈장마냥 달고 다니기도 합니다. 바쁘다는 것 자체가 어떤 성취나 높은 생활 수준을 의미하는 것처럼 말입니다.
우리에게 정말로 중요한 사람들에게 자신을 온전하게 내주고 진실된 시간을 함께하지 않는다면, 언젠가 우리는 후회할 것입니다.
2)내 잠재력을 실현했다면 좋았을 텐데

사람들이 들려준 또 다른 후회는 자신이 될 수 있고 되어야 했던 사람이 되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삶을 돌아보면서 자신의 잠재력을 실현하지 못했으며 많은 일을 완수하지 못했음을 깨달았습니다.
직업 분야에서 성공해야 한다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이신 하나님이 바라시는 그런 사람이 되는 것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마지못해 발을 질질 끌면서, 얼마나 더 해야 하는지 조급해하면서, 해야 하는 일들에 불평하면서는 절대로 그리스도의 제자가 될 수 없습니다.
복음대로 사는 것에 관해서, 우리는 물속에 발가락만 담그고서 수영을 했다고 우기는 어린아이 같아서는 안 되겠습니다.

우리는 하나님 아버지의 아들과 딸로서 훨씬 많은 것을 이룰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선한 의도만으로는 충분치 않습니다. 우리는 행동해야 합니다. 무엇보다도, 우리는 하나님 아버지께서 우리에게 바라시는 존재가 되어야 합니다.
복음에 관한 간증을 선포하는 것은 훌륭합니다.

그러나 회복된 복음의 살아 있는 실례가 되는 것은 더 훌륭합니다. 우리가 맺은 성약에 더 충실하고자 바라는 것도 훌륭합니다. 그러나 실제로 덕스러운 삶을 사는 것을 포함하여 성스러운 성약에 충실하고, 지혜의 말씀을 지키며, 십일조와 헌금을 바치고, 궁핍한 사람들에게 봉사하는 것이 훨씬 더 훌륭합니다. 가족 기도, 경전 공부, 건전한 가족 활동에 시간을 더 내겠다고 선언하는 것 역시 훌륭한 일입니다. 그러나 이런 일을 실제로 꾸준히 행할 때, 우리 삶에는 하늘 축복이 임할 것입니다.
3)나 자신이 더욱 행복했다면 좋았을 텐데

죽음을 목전에 둔 사람들이 들려준 또 다른 후회는 자신이 더 행복했다면 좋았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너무 자주 우리는 손을 내밀면 닿을 듯한 어딘가에 우리를 행복하게 해 줄 무언가, 즉 더 나은 가족 여건, 더 풍족한 생활, 또는 힘든 시련의 끝이 있을 것이라는 환상에 사로잡힙니다.
나이가 들수록, 우리는 좀 더 자주 뒤를 돌아보며, 외적인 상황은 우리의 행복을 결정짓지 못하며, 결코 중요하지 않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이며, 우리의 행복을 결정하는 것은 우리 자신입니다.

제 아내와 저는 자전거 타기를 좋아합니다. 야외로 나가서 자연의 아름다움을 만끽하는 것은 참 즐겁습니다. 좋아하는 자전거 길도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다른 사람에 비해 얼마나 멀리 또는 빨리 달리느냐에 크게 신경 쓰지 않습니다.
그러나 종종 저는 우리가 조금 더 경쟁하며 타야 한다는 생각을 합니다. 심지어는 조금만 더 노력하면 더 빠른 속도로 자전거를 타며 더 좋은 시간을 보낼 것이라는 생각도 합니다. 그리고 가끔 저는 이런 생각을 제 훌륭한 아내에게 이야기하는 큰 실수를 범합니다.
저의 이런 제안에 대한 아내의 대답은 언제나 매우 친절하면서도 분명하고 직설적입니다. 아내는 웃으며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이건 경기가 아니잖아요. 그냥 달리는 거예요. 순간을 즐기세요.”정말 맞는 이야기 아닙니까!
우리는 살면서 때때로 무엇인가를 이루는 데 너무 열중한 나머지 그 여정에서 기쁨을 찾지 못합니다. 제가 아내와 자전거를 타는 이유는 무엇인가를 완수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아내와 함께하는 그 시간이 감미롭고 즐겁기 때문입니다.
끝나는 시점만을 보느라 눈앞에 있는 즐겁고 기쁜 순간들을 망쳐 버리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 아닙니까?
아름다운 음악을 들을 때 마지막 음이 울리고 나서야 그 음악을 진정으로 감상하고 즐깁니까? 아닙니다. 우리는 작품 전체에 흐르는 다양한 음과 선율, 화음을 듣고 이으며 감상합니다.
기도할 때, “아멘”이라는 기도의 끝 부분만 생각합니까? 물론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는 하나님 아버지께 더 가까이 나아가기 위해, 그분의 영과 그분의 사랑을 느끼기 위해 기도합니다.
미래의 어떤 순간에 다다를 때까지 행복을 기다려선 안 됩니다. 그 순간이 오면 행복은 언제나 우리 곁에 있었음을 깨닫게 됩니다! 지난날을 돌아볼 때에만 인생의 행복을 느낄 필요는 없습니다.
아마도 육신의 눈으로는 조금 덜 보고 마음의 눈으로 더 많은 것을 봐야 할지 모릅니다. 저는 이 글귀를 좋아합니다. “마음으로 볼 때만 분명하게 볼 수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눈에는 보이지 않거든.” (생떽쥐베리의 ‘어린왕자’의 어린왕자와 여우와의 대화)
우리는 “범사에 감사를 드리[라는]”명을 받았습니다. 그러니 우리의 현 상황에서 부정적인 것에만 초점을 맞추기보다는 감사드릴 만한 것이라면 작은 것이라도 우리의 눈과 마음으로 찾아보는 것이 낫지 않겠습니까?
“오늘이란 시간동안 우리는 무엇을 하고 있습니까?”우리가 내일만을 위해
산다면, 우리에게는 결국 수많은 텅 빈 어제만이 남을 것입니다
여러분은“내 인생에서 몇몇 부분을 개선해 볼까 생각 중인데,내일 시작해야겠다.”라고 단언하는 과오를 범한 적이 있습니까? 이러한 사고방식이라면 내일은 영원히 오지 않을 것입니다.그러한 내일은 오늘 우리가 그것들에 대해 무언가를 하지 않는 한 좀처럼 오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