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President Boyd K. Packer
Acting President of the Quorum of the Twelve Apostles
Boyd K. Packer, “The Quest for Spiritual Knowledge,” Liahona, Jan 2007, 14–19
From a talk given at a seminar for new mission presidents on June 25, 1982.
There is a God! He does live! Even if it is difficult to explain in words alone how I know that, I know through the power of the Holy Spiri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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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총관리 역원이 되기 전에 제게 깊은 영향을 준 한 가지 경험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언젠가 저는 비행기 안에서 무신론자라고 공언하는 사람 옆에 앉았는데 그가 하나님에 대한 자신의 불신을 너무나도 끈질기게 역설한 나머지 저는 그에게 제 간증을 전했습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존재하십니다. 저는 그분이 살아 계시다는 것을 압니다!”
그는 다음과 같이 이의를 제기했습니다. “알지는 못하시죠. 아무도 그건 몰라요. 알 수는 없습니다!” 제가 굴복하지 않자 법률가인 그는 간증이라는 주제에 대해 어쩌면 근본적이라 할 수 있는 질문을 하면서 빈정대며 은혜라도 베푸는 듯한 태도로 이렇게 말했습니다. “좋습니다. 알고 계시다는 말씀이지요. 어떻게 아시는지 말씀해 주십시오.”
비록 높은 학위를 가진 저였지만 막상 대답하려 하니 어떻게 이야기해야 할지 난감했습니다.
제가 성령과 증언이란 단어를 사용하자 그 무신론자는 “무슨 말씀을 하시는 건지 모르겠습니다.” 라고 응수했습니다. 기도, 분별력, 신앙이란 단어들도 마찬가지로 그에게는 무의미했습니다.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것 보세요, 진짜로 알고 있는 게 아니잖아요. 만일 안다면 어떻게 아는지 설명하실 수 있을 텐데요.”
저는 어쩌면 제가 지혜롭지 못한 방법으로 제 간증을 전한 것인지도 모른다고 생각했고,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습니다. 바로 그때 한 가지 경험을 하게 되었습니다. 무엇인가가 제 마음속에 떠올랐습니다. 여기서 선지자 조셉 스미스의 말씀 한 가지를 언급하겠습니다. “우리는 계시의 영이 주는 첫 번째 암시에 주의함으로써 유익을 얻을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순수한 예지가 여러분 안으로 흘러 들어오는 것을 느낄 때 그것은 여러분에게 갑작스럽고 놀라운 발상을 가져다 줄 수 있으며 … 여러분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해질 때까지 하나님의 영에 대해 배우고 이해함으로써 계시의 원리를 이해하게 될 것입니다.”1
이러한 생각이 마음속에 떠올랐고, 저는 그 무신론자에게 이렇게 질문했습니다. “소금이 어떤 맛인지 알고 계신가요?”
“물론 압니다.”라고 그가 대답했습니다.
나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러면, 제가 소금 맛을 한 번도 본 적이 없다고 가정하고, 그게 어떤 맛인지 설명해 주십시오.”
그는 잠시 생각해 본 후에 “글쎄요, 뭐, 달지도 않고 시지도 않은데요.”
“어떤 맛인지 말씀해 주신 게 아니라 어떤 맛이 아닌지 말씀해 주셨네요.”
그는 여러 차례 시도했지만 설명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는 단지 말로서는 소금을 맛보는 것과 같은 일상적인 경험조차 전달할 수 없었습니다. 저는 다시 한번 그에게 간증하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저는 하나님이 계시다는 것을 압니다. 당신은 그 간증을 비웃었고 제가 정말 안다면 어떻게 아는지 정확하게 말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영적으로 말하자면 저는 소금을 맛보았습니다. 소금이 어떤 맛인지 당신이 제게 말해 줄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이 지식이 어떻게 제게 왔는지 말로서는 전할 수가 없군요. 하지만 다시 말씀드리건대 하나님은 존재하십니다! 그분은 진정 살아 계십니다! 그리고 당신이 모른다고 해서 저도 모른다고는 말씀하지 마십시오. 왜냐하면 저는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헤어지면서 저는 그가 이렇게 중얼거리는 것을 들었습니다. “난 당신네 종교 따윈 필요 없어! 필요 없다고.”
그 경험 이후로 저는 제가 영적으로 알고 있는 모든 것을 말로 설명할 수 없다고 해서 당황하거나 부끄러워한 적이 결코 없습니다. 사도 바울은 이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우리가 이것을 말하거니와 사람의 지혜가 가르친 말로 아니하고 오직 성령께서 가르치신 것으로 하니 영적인 일은 영적인 것으로 분별하느니라.
“육에 속한 사람은 하나님의 성령의 일들을 받지 아니하나니 이는 그것들이 그에게는 어리석게 보임이요, 또 그는 그것들을 알 수도 없나니 그러한 일은 영적으로 분별되기 때문이라.”(고린도전서 2:13~14)
고요하고 작은 음성
경전에서 성령의 음성은 “거친 음성도”, “큰 음성도”(제3니파이 11:3) 아니라고 설명되어 있습니다. 그것은 “우뢰의 소리도 아니요, 크게 떠드는 소란한 음성도 아니요,” 도리어 “그것은 마치 속삭임과도 같은 심히 부드럽고 조용한 음성이었으되, 참으로 영혼에까지 꿰뚫었으며”(힐라맨서 5:30) “그들의 마음을 뜨겁게 하”(제3니파이 11:3)는 것입니다. 엘리야가 주님의 음성이 바람이나 지진이나 불 속에 있는 것이 아니라 “세미한 소리”(열왕기 19:12)라는 것을 배웠던 일을 기억하십시오.
성령은 소리치거나 위압적으로 우리를 뒤흔들어 우리의 주의를 끌지 않습니다. 성령은 속삭입니다. 극히 부드럽게 감싸기 때문에 우리가 다른 것에 몰두해 있으면 전혀 느끼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때로는 우리가 충분히 주의를 기울이도록 강력하게 성령의 음성이 임할 것입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경우에 우리가 그 부드러운 느낌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다면 성령은 물러나 우리가 구하고 귀 기울이고 고대의 사무엘처럼 “말씀하옵소서 주의 종이 듣겠나이다”(사무엘상 3:10)라고 말하며 찾아올 때까지 기다릴 것입니다.
영적인 것들은 강요할 수 없습니다
배워야 할 것이 또 있습니다. 간증은 갑자기 주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간증은 성장하는 것입니다. 키가 자라듯이 간증도 자랍니다. 간증은 점진적으로 자라기 때문에 우리는 그것을 잘 인식하지 못합니다.
영적인 것들은 강요할 수 없습니다. 억지, 강제, 강요, 압력, 요구 등의 단어는 영과 관련된 우리의 특권을 묘사하는 말이 아닙니다. 때가 이르기 전에 콩을 싹트게 하거나 달걀을 부화시킬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영을 강제로 반응하게 할 수는 없습니다. 성장을 촉진하기 위하여 기후를 조성하고 영양을 주고 보호할 수는 있지만 억지로 강요할 수는 없습니다. 자라기를 기다려야만 합니다.
커다란 영적인 지식을 얻으려고 조급해하지 마십시오. 자라게 해 주고 자랄 수 있도록 도와주되 강요하지는 마십시오. 그렇지 않으면 잘못된 길로 가는 문을 열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의 모든 자원을 활용하십시오
우리는 삶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우리가 이미 소유하고 있는 빛과 지식을 사용해야 합니다. 우리는 경전을 통해 의무를 행하라는 지시를 이미 받았기 때문에 그에 대해 계시를 받을 필요가 없습니다. 또한 우리가 이미 받은 영적 예지와 세상적인 예지를 계시가 대신해 주기를 기대해서는 안 됩니다. 다만 그 예지를 좀 더 확장시킬 수 있을 뿐입니다. 우리는 삶을 지배하는 일상의 과정과 규칙, 규정을 따르는 가운데 평소와 같이 평범하게 살아가야 합니다.
규칙과 규정과 계명은 귀중한 보호책입니다. 만약 우리가 다른 길로 나가기 위해 계시된 지시를 받을 필요가 있다면 그 지시는 필요한 시점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 것입니다. “열심히 노력하”라는 권고는 참으로 현명한 권고입니다.(교리와 성약 58:27 참조)
여러분의 간증은 여러분이 알고 있는 것보다 더 강할 수 있습니다
모든 것을 알지 못한다고 해서 주저하거나 부끄러워하지 마십시오. 니파이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하나님께서 그의 자녀들을 사랑하심을 알고 있나이다. 그러할지라도 모든 것의 의미를 알지는 못하나이다.”(니파이전서 11:17)
여러분의 간증에는 여러분이 인식하는 것보다 더 큰 힘이 있을 수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니파이인들에게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누구든지 상한 마음과 통회하는 심령을 가지고 내게로 오면 내가 그에게 불과 성신으로 침례를 줄 것이라. 이는 곧 레이맨인들이 그 돌이킬 때에 나를 믿는 그들의 신앙으로 인하여 불과 성신으로 침례를 받은 것 같으려니와 그들이 이를 알지 못하였느니라.”(제3니파이 9:20)
몇 년 전에 저는 먼 나라에서 선교 사업을 하고 있는 아들을 그의 선교 임지에서 만났습니다. 아들이 그곳에서 봉사한 지 일 년이 되었을 때였습니다. 그의 첫 번째 질문은 이것이었습니다. “아버지, 어떻게 하면 영적으로 성장할 수 있을까요? 저는 영적으로 성장하려고 정말 열심히 노력했지만 전혀 발전하지 못했어요.”
그것은 그 아이의 생각이었으며, 제 생각은 달랐습니다. 아들이 단 일 년 동안 얻었던 영적인 성장과 성숙함은 믿을 수 없을 정도였습니다. 그것은 놀라운 영적 경험이 아닌 점진적인 성장이었기 때문에 아들은 “이를 알지 못하였”던 것입니다.
간증을 전함으로써 자신의 간증을 찾으십시오
선교사가 다음과 같이 말하는 것은 드문 일이 아닙니다. “제가 간증을 얻기 전에 어떻게 간증할 수 있습니까? 어떻게 하나님이 살아 계시고, 예수가 그리스도이시며, 복음이 참되다는 것을 간증할 수 있습니까? 만일 제가 그런 간증을 갖고 있지 않다면 그것은 부정직한 일이 아니겠습니까?
여러분에게 간절히 가르쳐 드리고 싶은 한 가지 원리가 있습니다. 간증은 전하는 과정에서 찾게 되는 것입니다! 영적인 지식을 찾기 위한 탐구 과정 어딘가에 철학자들이 말하는 “신앙의 도약”이란 것이 있습니다. 빛의 가장자리를 지나 어둠 속으로 발을 내딛는 순간, 우리는 바로 한두 발자국 앞까지만 빛이 비춰지고 있음을 알게 됩니다. 경전에서 말하듯이 “사람의 영혼은” 진실로 “여호와의 등불”입니다.(잠언 20:27)
자신이 읽은 것이나 다른 사람이 말한 것을 통해 증거를 얻는 것은 필수적인 시작 단계입니다. 그러나 여러분이 간증한 것이 참되다고 영이 여러분의 가슴속에 확인시켜 주는 것은 그와는 전혀 다른 것입니다. 여러분이 간증을 하는 동안 간증이 주어지리라는 것을 이해하실 수 있겠습니까? 여러분이 가진 것을 줄 때, 그것은 더욱 큰 것으로 바뀔 것입니다!
소리 내어 말하는 것은 자신의 신앙에 대한 시험입니다.
신앙의 행위로서 여러분이 바라는 것들이 참됨을 간증하십시오. 이것은 선지자 앨마가 그를 따르는 자들에게 제언한 바와 같은 일종의 실험입니다. 우리는 사물에 대한 완전한 지식이 아니라 신앙으로써 출발합니다. 앨마서 32장에 있는 설교는 진리의 탐구를 시작하는 자와 겸손히 구하는 자에게 말씀한 것으로서 경전에 담긴 가장 위대한 메시지 중 하나입니다. 그 메시지에는 진리에 대한 증거의 열쇠가 들어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영과 그에 대한 간증은 대부분 여러분이 간증을 전할 때 올 것이며 그것을 나눌 때에만 여러분과 함께 머뭅니다. 그 과정에 복음의 본질이 담겨 있습니다.
이는 완전한 기독교 정신을 보여 주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기꺼이 간증을 나눌 준비가 되어 있지 않으면 간증을 찾거나 유지하거나 키울 수 없습니다. 간증을 아낌없이 나눌 때 그 간증은 여러분의 것이 됩니다.
여러분은 주님의 사업을 행할 수 있습니다
이 사업에는 위대한 권능, 영적인 권능이 있습니다. 여러분처럼 확인에 의해 성신의 은사를 받은 평범한 교회 회원이 주님의 사업을 행할 수 있습니다.
수년 전에 한 친구가 이런 이야기를 들려 주었습니다. 17세의 선교사였던 그 친구는 동반자와 남부에 있는 한 오두막집 앞에서 걸음을 멈추었습니다. 그날은 선교 임지에서의 첫날이었으며 그 집은 그가 방문한 첫 번째 집이었습니다. 창문 안쪽에서 머리가 희끗한 한 여인이 무엇을 원하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동반자가 대답을 하라고 그 친구를 쿡쿡 찔렀습니다. 두렵기도 하고 약간 말문이 막혔던 그는 마침내 불쑥 말을 꺼냈습니다. “하나님이 한때 인간이었던 것처럼 인간도 언젠가는 하나님과 같이 될 수 있습니다.”
이상한 일이지만 그녀는 흥미를 느꼈고, 그런 말을 어디서 들었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는 “성경 안에 있습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녀는 잠시 안으로 갔다가 성경을 가지고 나왔습니다. 한 교구의 목사였음을 밝힌 그녀는 그에게 성경책을 건네 주며 “자, 보여 줘요.”라고 말했습니다.
그는 성경을 들고 불안하게 앞뒤로 페이지를 넘겼습니다. 결국 그는 성경을 다시 건넸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찾지 못하겠네요. 그 안에 들어 있는지조차 확실히 모르겠고, 있다 하더라도 찾을 수가 없습니다. 저는 유타 주의 캐쉬 밸리에서 온 가난한 시골 소년일 뿐입니다. 훈련을 많이 받지 못했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에 따라 사는 가정에서 자랐습니다. 복음은 우리 가족에게 너무나 많은 것을 주었기 때문에 저는 자비로 2년 동안 복음에 대한 제 생각을 사람들에게 전하고자 선교사 부름을 받아들였습니다.”
그로부터 반세기가 지난 후, 그는 그녀가 문을 열어젖히고 “들어와요. 당신이 말해야 하는 것이 무엇인지 듣고 싶군요.”라고 말했던 것에 대해 이야기하며 눈물을 금치 못했습니다.
영에 의해 배우십시오
계시에 대한 모든 본질적인 요소들, 즉 기도, 금식, 신권 및 권세, 합당성 등 이야기할 것은 너무나 많습니다. 이러한 것들을 이해할 때 이 모든 것들은 서로 완전히 조화를 이룹니다. 그러나 어떤 것들은 혼자서, 개인적으로 영에 의해 배워야 합니다.
저는 하나님께서 살아 계시고, 예수는 그리스도이시며, 우리가 확인을 받을 때 우리에게 부여되는 성신의 은사가 신성한 은사라는 것을 경험으로 압니다. 몰몬경은 참됩니다! 이 교회는 주님의 교회입니다! 예수는 그리스도이십니다! 우리에게는 우리를 감리하시는 하나님의 선지자가 계십니다! 기적의 날은 끝나지 않았으며, 천사가 인간에게 나타나 성역을 베푸는 일도 끝나지 않았습니다! 교회에는 영적인 은사가 있습니다. 그 중 가장 훌륭한 것은 성신의 은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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