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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말씀·경전

진심과 기꺼이 하고자 하는 마음

by 높은산 언덕위 2015. 10. 31.

By Elder Jeffrey R. Holland Of the Quorum of the Twelve Apostles
Jeffrey R. Holland, “Elder Quentin L. Cook: A Willing Heart and Mind,” Liahona, Apr 2008, 16–21

유타 주 로건의 한 초등학교에서 소방 방재 훈련이 있던 날이었습니다. 6학년 회장으로 충실하게 봉사하던 조 쿡은 소방 방재 단장이기도 했습니다. 그는 이번에 대피 시간에 대해 신기록을 세우리라는 결의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이윽고 화재 경보가 울리자, 학생들은 일사불란하게 건물을 빠져나갔습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조는 흐뭇했습니다. ‘이번에는 꼭 신기록을 세워야지. 우리는 역사에 길이 남게 될 거야’라고 어린 조는 생각했습니다. 영광스러운 승리가 손끝에 닿으려는 순간, 안내 방송이 들려왔습니다. “건물 안에 아직 사람이 있습니다. 대피가 완전히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신기록의 꿈은 눈앞에서 사라졌습니다. 조 쿡은 1학년 학생 한 명이 건물에서 뒤늦게 빠져나오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그런데 그 아이는 다름아닌 조의 남동생 쿠엔틴이었습니다. 조는 동생 때문에 캐시 밸리 역사 속에 영원히 기억될 기회를 잃어버린 것이었습니다.
화가 머리끝까지 난 조가 고래고래 고함을 질렀습니다. “도대체 뭘 꾸물거리고 있었던 거야!”
쿠엔틴은 낡고 커다란 부츠 한 켤레를 보여 주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형, 피터[가명]가 가끔 자기 발보다 훨씬 큰 신발을 물려받아서 신는 거 알지? 화재 경보가 울렸을 때 그 친구가 재빨리 뛰어 나가느라 부츠가 벗겨져 버렸어. 소방 훈련을 망칠까 봐 그냥 맨발로 뛰어 나갔을 거야. 그 친구가 눈 속에서 발이 시려울까 봐 내가 부츠를 가져다주려고 돌아갔었어.”
이 감동적인 일화는 쿠엔틴 라마 쿡 장로님이 어린 시절부터 얼마나 따뜻한 마음씨를 지니셨는지, 구주께서 가르치신 원리에 얼마나 충실하셨는지를 단적으로 보여 줍니다. 유년 시절의 친구이자 훗날 선교사 동반자가 된 리 버크 형제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저는 쿠엔틴을 평생 동안 알아 왔습니다. 그는 자기 자신이나 가족, 또는 교회의 명예를 실추시킬 만한 일을 절대로 하지 않았습니다.”쿠엔틴의 사랑하는 어머니 버니스는 어린 쿠엔틴의 운명을 주님께서 잘 알고 계신다는 것을 분명히 이해했습니다. 어머니의 축복사의 축복문에는 그녀의 아들들이 가족에게“명예를 가져다 줄 것이며” “주님의 대업을 발전시키는 데 큰 힘이 될”것이라는 내용이 있었습니다. 그분의 아들들은 참으로 그렇게 살아 왔으며 주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로 부름 받은 쿠엔틴 엘 쿡 장로님은 앞으로도 그렇게 해나갈 것입니다.
타인의 모범에서 배움

1940년 9월 8일 유타 주 로건에서 제이 버논과 버니스 킴볼 쿡 사이에 태어난 쿠엔틴은 목표를 세우고 그것을 향해 일하는 것의 중요성을 어린 시절부터 아버지에게서 배웠습니다.
쿡 장로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저희 아버지께는 세 가지 규칙이 있었습니다. 첫 번째 규칙은 가치 있는 목표가 반드시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우리가 우리의 목표를 언제든지 바꿀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세 번째 규칙은 우리가 선택한 목표가 무엇이든지우리는 그것을 향해 꾸준히 노력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쿠엔틴은 아버지와 자주 대화를 나누며 주변 사람들을 관찰하고 그들의 가장 좋은 점을 자신에게 적용하는 법을 배웠습니다. “우리에게 기꺼이 배우고자 하는 자세만 있다면 주변 사람들에게서 배울 수 있는 것들은 너무나도 많습니다”라고 쿡 장로님은 말씀하십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훌륭한 사람들 곁에서 생활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로건에서 성장한 장로님은 그러한 기회가 많았습니다. 한 가지 예를 들면, 쿡 장로님은 현재 십이사도 정원회의 일원이신 엘 톰 페리 장로님이 젊은 시절에 제2차 세계대전에 참전한 후 고향에 돌아와 성찬식에서 말씀하셨던 경험담을 지금까지도 기억하십니다. 그 감동적이었던 순간은 장로님의 유년 시절을 장식하는 가장 생생한 추억 중 하나가 되었습니다.
청년이 된 쿡 장로님은 스포츠를 사랑했습니다. 그분이 다니던 고등학교의 농구 팀과 미식축구 팀이 주 챔피언 결정전에서 입상하는 데 쿡 장로님도 한몫하셨습니다. 그분의 관심사에는 토론과 정치도 포함됩니다. 쿡 장로님은 열여섯 살 때 두 명의 주 대표 중 하나로 선발되어 전국 대회에 출전하기도 했습니다. 그 자리에서 그는 당시와 훗날의 미합중국 대통령들을 만났습니다. 드와이트 디 아이젠하워와 존 에프 케네디, 린든 비 존슨, 리처드 엠 닉슨, 제럴드 알 포드가 입법 절차에 참여하는 모습을 본 쿡 장로님은 깊은 인상을 받으셨습니다. 그리고 이 날의 경험은 쿡 장로님이 훗날 법조인의 꿈을 키우는 데에도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선교 사업을 나가기 전에 유타 주립 대학교를 다니던 쿡 장로님은 친구인 더블류 롤프 커와 함께 학생회 임원으로 선출되셨습니다. 롤프 장로님은 훗날 칠십인 제일정원회로 부름을 받으셨고 현재는 교회 교육 기구의 교육 총감으로 봉사하고 계십니다.
쿡 장로님은 1960년부터 1962년까지 영국 선교부에서 봉사하셨습니다. 저 역시 그곳에서 선교 사업을 했었습니다. 저희는 당시에 칠십인 제일정원회의 일원이셨던 저희의 선교부 회장님인 매리온 디 행스 장로님으로부터 깊은 영향을 받았습니다. 그분은 모든 선교사들에게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는 것과 결심의 중요성을 강조하셨습니다. 행스 장로님은 저희에게 구주를 사랑하고 몰몬경을 소중히 여기며 교회와 복음에 평생토록 진실하라고 가르치셨습니다. 45년 여가 지난 지금, 한때 선교사 동반자였던 두 사람이 십이사도 정원회에서 함께 봉사하는 것은 참으로 놀라운 일입니다.
장로님에게 모범을 보여 준 수많은 선한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쿡 장로님은 그들 중 대부분이 높은 지위에 있지 않았었다는 것을 지적하십니다. 그들은 그저 선한 사람들이었을 뿐입니다.
“우리는 교리에서 배울 수도 있고 훌륭한 모범을 통해 배울 수도 있습니다.”쿡 장로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그러나 여러분이 이 두 가지를 조화롭게 하나로 만들어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가르치는 것을 삶에서 실천하는 사람들을 만난다면, 그것이야말로 최상의 조합입니다. 그러한 사람들이 반드시 총관리 역원이거나 어떤 명망있는 직업을 가져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사회의 각계각층에서 우리는 이런 사람들을 찾아 볼 수 있습니다.”
가족의 영향력

쿡 장로님은 평생 동안 훌륭한 사람들을 만나는 축복을 받았습니다. 그 중 그분에게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사람들은 바로 가족들입니다.
장로님은 사랑이 넘치고 가정적이셨던 아버지와 어머니께 무척 감사해 하십니다. “그분들은 구주를 사랑하셨고 우리를 올바르게 양육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셨습니다.”쿡 장로님은 또한 형 조와 누이 수잔의 사랑과 지지에 감사해 합니다.
장로님의 인생에서 중요한 경험 한 가지는 그분이 열다섯 살이었을 때 일어났습니다. 그분의 형은 선교 사업을 가고 싶어 했습니다. 그러나 그 당시에 아버지는 여전히 올바른 분이셨지만 교회 활동에 흥미를 잃고 계셨고, 그래서 조가 의과 대학에 진학하기를 바라셨습니다. 아버지를 무척 존경했던 조와 쿠엔틴은 아버지의 조언에 대해 논의하기로 했습니다. 그래서 둘만의 시간을 마련했습니다.
두 형제는 각 선택의 긍정적인 면과 부정적인 면을 고려하며 밤늦게까지 이야기했습니다. 그들이 도달한 결론은 이러했습니다. 만약 이 교회가 그저 또 하나의 훌륭한 조직에 불과하다면 조는 의과 대학에 감으로써 사람들에게 더욱 큰 봉사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만약 구주께서 진실로 살아 계시고, 조셉 스미스가 진실로 선지자였으며, 예수 그리스도 교회가 하나님의 지시에 따라 주님께서 조직하신 참된 교회라면, 몰몬경이 참되다면, 그렇다면 조의 의무는 분명했습니다. 다음날 아침, 조는 아버지에게 가서 그들이 논의한 것들을 말씀드렸고 간증을 나눴습니다. 이윽고 그는 아버지의 지지와 어머니의 기쁨에 찬 축복을 받으며 선교 사업을 떠났습니다.
형과 나누었던 그 대화는 어린 쿠엔틴에게 커다란 영향을 미쳤습니다. 그는 구주에 대한 간증은 언제나 가지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열다섯 살 소년에게 조셉 스미스와 교회와 몰몬경 등은 전혀 다른 문제였습니다. 그는 이러한 것들을 믿고는 있었지만 그것들의 확실한 실재를 확인해 주는 영적인 증거는 아직 받지 못했었던 것입니다.
그날 밤 조와 대화를 나눈 쿠엔틴은 방으로 돌아와 무릎을 꿇고 기도를 드렸습니다. 형이 받았던 것과 동일한 증거를, 바로 온 마음을 다해 열망했던 증거를 간구했습니다. 그리고 그날 밤, 그가 받은 증거는 너무나도 강력하여 그가 가졌던 모든 의심을 영원히 씻어 버렸습니다.
존경스런 메리

쿡 장로님의 삶에 또 하나의 커다란 영향력은 그분의 아내 메리입니다. “이 세상에서 그녀만큼 선하고 의로우며 행복한 사람은 찾기 어려울 겁니다. 그녀에게는 풍부한 유머 감각이 있습니다.”라고 장로님은 말씀하십니다.
쿡 장로님의 딸인 캐서린 쿡 나이트 자매는 이렇게 덧붙였습니다. “아버지는 완벽한 아버지셨어요. 저는 그분의 모든 것을 사랑합니다. 그렇지만 저희 어머니는 거의 성인에 가까우시지요.”
음악적 재능이 뛰어난 쿡 자매님은 음악을 가르치셨으며 가정을 음악으로 채우셨습니다. 실제로 쿡 장로님이 메리 자매님을 처음 알게 된 것도 중학교 1학년 재능 발표회에서였습니다. 장로님은 그때를 이렇게 회상하십니다. “연한 금발 머리의 한 소녀가 일어나더니‘햇살이 비치는 거리에서’를 불렀습니다. 아직 중학생밖에 안 되었지만 그녀는 놀라울 정도로 깊고 풍부한 목소리를 갖고 있었어요. 저는 정말로 깜짝 놀랐습니다. 그리고 그녀의 인생은 그 노래를 주제가로 삼기에도 손색이 없었답니다. 그녀는 참으로 행복하고 밝은 성품을 지니고 있습니다.”
학창 시절 동안 둘은 여러 번 함께 일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중학교 때 장로님은 학생회 회장으로, 자매님은 학생회 부회장으로 선출되었습니다. 두 분은 토론 팀에 함께 참여했습니다. 그후 장로님이 고등학교 졸업반에서 전교 회장이 되었을 때에도 자매님은 학생회 임원으로 함께 일했습니다.
쿡 장로님은 다음과 같이 회상하십니다. “우리가 어떤 특별한 관계가 아니었을 때부터 우리는 이미 친구였습니다. 저는 그녀와 사랑에 빠지기 전부터 이미 그녀를 존경했습니다. 그리고 그녀와의 결혼은 제가 내린 최고의 결정이었습니다.”
쿡 장로님과 자매님은 1962년 11월 30일에 유타 주 로건 성전에서 결혼 서약을 맺으셨습니다.
각계각층의 사람들을 사랑함

1963년에 유타 주립 대학을 졸업하며 정치학 학위를 받은 후 쿠엔틴과 메리는 캘리포니아로 이사했습니다. 1966년에 스탠포드 대학에서 법학 박사 학위를 받은 쿡 장로님은 샌프란시스코 베이 지역의 카, 맥클러란, 잉거솔, 톰슨 앤 혼 법률 사무소에서 일하기 시작하셨습니다.
쿡 장로님은 그곳에서“내가 믿는 바를 남들에게 거리낌없이 알리겠다”고 결심하셨습니다. 쿡 장로님의 전문 분야였던 상법과 의료 복지법에 관련된 업계에서 장로님은 학력이 매우 높은 부유층 사람들과 접할 기회가 많았습니다. 쿡 장로님의 아들 래리는 아버지가 직장 동료들과 지역 사회 인사들 사이에서 크게 존경 받는다는 사실에 감명 받았던 때를 아직도 기억합니다. “아버지께서 법률 회사를 그만두실 때와 그 후 의료 복지 업계의 기관장직에서 퇴직하실 때 아버지의 퇴임을 기념하는 만찬 행사에 참석했었습니다. 교회 회원이 아니었던 수많은 동료들이 하나 둘씩 아버지가 그들에게 어떠한 영향을 미쳤는지, 어떻게 그들을 이끌고 가르쳐 주셨는지, 자신의 시간과 힘을 뺏기는 것을 전혀 아까워하지 않고 어떻게 그들의 일을 사심없이 도와 주셨는지에 대해 때로는 눈물을 흘리며 이야기하는 모습을 보고 저는 무척 놀랐었습니다.”
그와 동시에 장로님은 교회 부름을 통해 매우 다양하고 광범위한 문화적 배경과 경제적 능력을 가진 교회 회원들과 소중한 만남을 키워나가셨습니다. 쿡 장로님은 직장과 교회에서 사회 각층의 사람들을 이해하는 지혜를 배우셨습니다. 그리고 그와 함께 만인에 대한 사랑도 자라났습니다.
쿠엔틴 엘 쿡 장로님은 감독으로 봉사하라는 부름을 받았습니다. 그 후 스테이크 회장단 보좌(스테이크 회장은 그분의 사랑하는 형인 조였답니다!)와 스테이크 회장으로 봉사하셨습니다. 당시 장로님의 스테이크에는 영어뿐 아니라 스페인어, 통가어, 사모아어, 타갈로그어, 북경어와 광동어를 사용하는 와드와 지부도 있었습니다.
어떤 회원들은 교육을 충분히 받지 못했거나 가난했습니다. 그러나 쿡 장로님은 그들에게서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쿡 장로님은 감독단에서 함께 봉사했던 한 형제를 이렇게 기억하십니다. “내가 아는 가장 훌륭한 사람 중 한 명”인 그분은 빵을 배달하는 직업을 갖고 있는데, 그분은 와드 지도자들이 서류 가방을 가지고 오는 것을 보고 자신도 무언가 한 가지를 가져와야겠다고 다짐했습니다. 그러나 그분이 가져올 만한 것은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분은 대신 사람들에게 나눠 줄 빵 반죽으로 가방을 채웠습니다. 기꺼이 봉사하고자 하는 이 겸손한 분의 마음에는 오직 다른 사람들에 대한 사랑이 넘쳤던 것입니다.
“제가 훌륭한 사람들에게서 배우라고 말씀드리는 것은 특정 직업이나 일정 수준 이상의 학력을 가진 사람들로부터 배우라는 뜻이 아닙니다. 여러분은 어느 곳에서나 훌륭한 사람들을 찾을 수 있으며, 그들 모두에게서 배울 수 있습니다.”
가정에서 준비됨

쿡 장로님과 메리 자매님의 세 자녀들은 샌프란시스코에서 자랐습니다. 쿡 장로님은 직장과 교회 부름 때문에 바쁜 일상을 보내면서도 항상 자녀들과 친밀한 관계를 발전시키는 데 주의를 기울이였습니다.
“정원에서 일하거나, 운동을 하거나, 혹은 야외에서 함께 무엇을 하든지 교회와는 완전히 다른 환경에서도 미덕이 적용되는 것을 자녀들이 볼 수 있도록 하는 것은 교회의 지도자들에게 특히 중요합니다.”
쿡 장로님의 둘째 아들 조는 그저 가르치는 것이 아닌, 아버지의 몸소 실천하는 사랑의 모범을 기억합니다. 브리검 영 대학교에 진학한 조가 첫 학기 시험을 마치고 샌프란시스코까지 운전해서 돌아와야 했을 때, 조는 자신을 걱정하던 아버지를 기억합니다. 당시는 12월 말이었고, 길에는 눈이 쌓였을 수도 있었습니다. 그리고 조는 이제 막 시험을 마쳤기 때문에 피곤했을 것입니다. 학기가 끝났을 무렵, 조는 그의 기숙사 문을 노크하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문 밖에는 아들과 함께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샌프란시스코에서 비행기로 날아온 그의 아버지가 서 있었습니다. 조는 그것이 자신을 향한 아버지의 강력한 사랑 표현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아버지와 함께 집으로 돌아가면서 조는 여러 가지 복음 원리에 대한 토론과 구주에 대한 간증으로 충만한 시간을 보냈습니다. 그 시간은 젊은 시절의 조로 하여금 갖고자 하는 간증이 어떠한 것인지, 그리고 자신이 미래에 어떤 아버지가 될 것인지에 관한 비전을 보여 주었다고 회상합니다.
아버지가 하셨던 것처럼 쿡 장로님은 그의 자녀들에게 목표를 세우고 그 목표들을 달성하는 데 영향을 미치는 스스로의 행동과 활동을 평가하는 방법을 가르치셨습니다. 쿡 장로님의 가족들은 함께 복음에 초점을 맞춘 목표들을 세우기도 했습니다. 쿡 장로님은 가족이 함께 가족 기도, 가족 경전 공부, 규칙적인 가정의 밤과 같은 종교적 가르침을 적절히 실천한다면 자녀들은 어느 곳에서나 의롭게 자랄 수 있다고 믿고 계십니다.
그 열쇠는 바로 사적이고도 개인적으로 행하는 종교적인 습관이라고 쿡 장로님은 말씀하십니다. “자녀들의 방문 옆을 지나면서 그들이 경전을 공부하거나 무릎 꿇고 기도하는 것을 보는 것은 아버지인 저에게 가장 중요한 일들 중 하나입니다.”
그러나 개인적인 종교 습관은“여러분 가족의 종교적 습관이 자녀에게 직업과 교육 등의 다른 모든 인생의 목표보다 구주에 대한 간증을 갖고 의롭게 사는 것이 우선되어야 한다는 점을 분명하게 할 때”더 잘 발전하는 것 같습니다.
봉사하기 위해 준비함

캘리포니아에서의 30년 동안, 쿡 장로는 직장 생활에서뿐 아니라 교회에서도 여러 중책들을 맡으셨습니다. 그분은 법률 회사에서 동료로 일을 시작하여 동업자로, 경영을 맡는 동업자로 승진했으며, 그 후에는 그가 부회장을 역임했던 수터 헬스와 합병된 캘리포니아 헬스케어 시스템의 회장 및 CEO를 역임하셨습니다.
그 당시 장로님은 지역 대표와 지역 관리 역원으로 봉사하고 계셨으며 1996년에는 칠십인 제이정원회의 일원이 되셨습니다. 그리고 1998년에는 제일정원회로 부름을 받으셨습니다.
총관리 역원으로서 쿡 장로는 필리핀 및 미크로네시아 지역 회장단에서 봉사하셨고 교회의 태평양 도서 지역과 북 아메리카 북서 지역 회장으로 봉사하셨습니다. 세계의 충실한 성도들에 대한 그의 사랑도 계속 커져갔습니다.
교회의 선교사부 집행 책임자로서 그분은 새로운 선교사 지침서인 나의 복음을 전파하라를 집필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셨습니다. 그러나 쿡 장로님은 그 공로를 인정 받으려 하지 않으십니다. 그분은“주의 손이 바로 첫날부터 그 안에 임재했습니다. 제일회장단과 십이사도 정원회의 모든 분들이 믿을 수 없을 만큼의 공헌을 하셨습니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준비되고 기꺼이 함

쿡 장로님은 십이사도 정원회에서 봉사할 수 있도록 잘 준비된 분이십니다. 다른 사람들로부터 기꺼이 배우고자 하는 마음과 전생애 동안 계속된 비이기적인 봉사는 그분이 주님께 그의 마음과 기꺼이 하려는 마음을 바칠 수 있도록 해 주었습니다.
“저는 사도이셨던 모든 분들을 존중하고, 지지하고, 존경합니다. 그분들이 저에게 미친 영향력은 심오합니다. 제가 어떤 공헌을 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저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구주이시며, 하나님께서는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시라는 것, 조셉 스미스는 이 경륜의 시대의 선지자였으며 오늘날에도 선지자가 계시다는 것을 압니다. 그 지식이 제 삶의 중심에 있습니다.”
우리는 쿠엔틴 엘 쿡 장로님이 사도직을 수행하시면서 그 지식이 계속되리란 것을 확신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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