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종교/순결·모범·순종

인간이 하나님께 순종할 때, 그것은 맹종이 아님

by 높은산 언덕위 2015. 10. 15.

스펜서 더블류 킴볼 장로의 다음 말씀은 하나님의 권고에 따르는
것이 맹종이 아니라는 점을 아주 명확히 해준다.
“순종하는 것! 귀기울이는 것! 이 얼마나 힘든 요구입니까? 우리는
종종 이런 말을 듣습니다. ‘어느 누구도 내게 무슨 옷을 입으라,
무엇을 먹고 마셔야 한다고 말할 수 없어. 누구도 내가 안식일에
무엇을 해야 한다거나, 돈을 어떻게 관리해야 한다고 말할 수도
없고 어떤 방법으로든 개인적인 자유를 제한할 수 없지.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하면 돼! 맹종하진 않겠어 !
“맹종! 그런 사람들은 거의 이해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주님은
조셉 스미스를 통해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것은 그것이 무엇이든지 간에, 비록 그
일이 다 끝나고 오랜 시간이 지날 때까지 그 이유를 알 수
없을지라도 그 일은 다 옳습니다
.’(Scrapbook of Mormon
Literature, vol. 2, 173쪽)
“인간이 창조주의 명령에 순종할 때, 그것은 맹종이 아닙니다.
전체주의적인 군주에게 복종하면서 위축되는 것과 하나님께 드리는
고귀하고 자발적인 순종은 얼마나 다른 것입니까? 독재자는
야심차고 이기적이며 감추어진 동기를 지니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모든 계명은 의롭고, 모든 지시에는 목적이 있으며, 모든 것이
다스림을 받은 이들의 유익을 위한 것입니다. 전자는 맹종일 수도
있으나, 후자는 분명히 신앙의 순종입니다. 
“아마 교도소에 있는 죄수는 맹목적으로 순종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는 강요당하기 때문입니다. 그의 결정의 대부분은 그를
위해 내려집니다. 어느 면에서 이들과 비교될 만한 사람들은
자신들의 일과 오락과 종교, 그리고 다른 활동들이 통제되고
규제되는 독재자의 신하들입니다. 후자는 분명히 맹종입니다. …
사람들이 모든 신앙과 모든 순종을 맹신과 맹종으로 말할 때,
그들은 자신의 연약함을 감추려는 것이 아닙니까? 그들은
귀기울이지 않은 자신들의 실패를 정당화하기 위한 구실을 찾고
있는 것이 아닐까요?
“어떤 사람은 소득세에는 엄밀하게 순종하여 재산세 마감일 전에
전액을 납부하면서도 안식일의 율법을 무시하고 십일조를 제때에
내지 않거나 전혀 내지 않으면서 자신을 정당화하려고 합니다.
“전자의 경우에 그는 자유나 재산을 박탈당하거나 집이나 개인
재산을 잃을 수도 있겠으나, 후자의 경우에 그는 영혼을 잃을 수
있습니다. 영적인 일에서도 세상적인 일에서와 마찬가지로 정말로
벌칙이 따르는데, 주요 차이점은 형벌의 신속함인데, 주님은
너무도 오래 참으시는 분입니다.
“어떤 사람은 첫번째 경우(세금 납부)를 맹종이라고 부르지
않으면서도 영적인 계명을 종종 이렇게 부릅니다.
학생이 수업료를 내고 읽기 과제를 행하고 수업에 참석하고
이렇게 하여 그 결과 학위를 받을 자격을 갖추는 것이
맹종이겠습니까?
 
어린 자녀가 기분이 좋아서 탁자에서 미소짓는 아버지의 튼튼한
팔에 안기는 것이 맹종이겠습니까, 아니면 분명 자녀를 받아 줄 수있다고 느끼고 생명보다 더 자녀를 사랑하는 애정 많은 부모에
대한 무조건적인 신뢰이겠습니까?
병으로 고통받는 사람이 의사가 조제해 준 쓴 약을 먹거나 그의
소중한 몸을 외과 의사의 수술용 칼에 맡긴다면 그것이
맹종이겠습니까, 아니면 안심하고 확신할 수 있는 사람에 대한
믿음에 찬 순종이겠습니까?

수로 안내원이 암초가 있음을 표시하는 부표들 사이로 배를 몰아
깊은 물로 가도록 하는 것이 맹종이겠습니까, 아니면 이런 보호
장치를 설치한 사람들의 고결성에 대한 확신이겠습니까?

제한된 시야와 초보적인 지식, 이기적인 욕망, 숨은 동기, 그리고
육욕적인 충동을 갖고 있는 우리가 우리를 낳으시고, 우리를 위해
세상을 창조하셨으며, 우리를 사랑하고, 숨은 동기도 전혀 없이
우리를 위해 건설적인 프로그램을 계획하시고, 모든 자녀들에게
‘불멸과 영생을 가져다 주는 것’을 자신의 가장 큰 기쁨이요
영광으로 삼고 있는 사랑 많으신 아버지의 인도를 받아들여 따르고
그분의 명령에 순종하는 것이 맹종이겠습니까?
“선택 의지가 존재하지 않을 때, 통제가 있을 때 맹종이 될 수도
있겠으나, 주님의 종들을 통해 주어지는 주님의 모든 명령에는
강제가 전혀 없는 완전한 선택의지가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벌칙이 부과되고 처벌의 위협이 있는 곳에서는 선택의지가
결여되어 있으며, 복음을 거부한 것으로 저주받는다는 것은 어떤
경우에는 가혹한 것이고 선택의지를 빼앗는 것이라고 항의합니다.
이 말은 사실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결정은 우리가 내리는 것으로,
받아들일 수도, 또는 거절할 수도 있고, 규칙에 따를 수도, 또는
무시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Conference Report, 1954년
10월, 스펜서 더블류 킴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