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나 한 명씩 개별적으로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 “이 사람이 죄인을 영접하고 음식을 같이 먹는다”라고 주님을 비방했을 때, 그분께서는 잃어버린 양의 비유와 잃어버린 동전의 비유, 그리고 탕자의 비유로 알려진 세 가지 아름다운 이야기로 응수하셨습니다.
복음서의 저자인 누가가 이 세 이야기를 소개하면서, 비유라는 단어를 복수가 아닌 단수로 사용했다는 점이 흥미롭습니다. 주님께서는 100마리의 양, 10개의 동전, 2명의 아들 등 서로 다른 숫자가 나오는 세 이야기를 하시면서 한 가지 독특한 교훈을 가르치고 계셨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런데 이 이야기들 각각에서 가장 중요한 숫자는 바로 하나라는 숫자입니다. 그리고 그 숫자에서 배울 수 있는 한 가지 교훈은, 여러분이 장로 정원회에 있는 장로와 수련 장로 100명을 이끄는 목자 보조이거나, 청녀 10명을 돌보는 고문이거나, 또는 초등회 어린이 2명을 가르치는 교사인지는 모르겠지만, 여러분이 언제나 한 명씩 개별적으로 그들에게 성역을 베풀고 그들을 보살피며 사랑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참 어리석은 양이군요”라든지 “난 어차피 그 동전이 필요 없어요”, 또는 “정말 반항적인 아들이네요”라고 말해서는 절대 안 됩니다. 만일 여러분과 제가 “그리스도의 순수한 사랑”을 지니고 있다면, 잃어버린 양 이야기에 나오는 사람처럼 우리는 “아흔아홉 마리를 … 두고 그 잃은 것을 [기필코] 찾아내기까지 찾아다[닐]” 것입니다. 또는 잃어버린 동전 이야기에 나오는 여자처럼 우리는 “등불을 켜고 집을 쓸며 [기필코] 찾아내기까지 [아주] 부지런히 찾[을]” 것입니다. 만일 우리가 “그리스도의 순수한 사랑”을 지니고 있다면, 탕자 이야기에서 “아직도 거리가 먼데 … 그를 보고 측은히 여겨 달려가 목을 안고 입을 맞[춘]” 아버지의 모범을 따를 것입니다.
단 한 마리의 양을 잃어버린 사람의 마음이나, 단 한 닢의 동전을 잃어버린 여자의 마음에 담긴 절박함이 느껴지십니까? 또는 탕자의 아버지가 마음에 품고 있는 형언할 수 없는 사랑과 연민이 느껴지십니까?
(후안 에이 우세다 장로 칠십인 정원회 2023- 04)